김병완 / 이랑
공부는 세대와 계층에 따라서 해석과 적용이 유별나게 달라지는 속성이 있다. 막상 공부할 시간이 주어진 이들에겐 지옥과도 같은 것이 공부일 수도 있고, 막상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잡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공부는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그 가치가 달라진다. 사실 공부라고 하면 그저 학교 공부나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고 그저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좀 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그런 삶을 바탕으로 타인들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은 어째서 성공과 출세를 위한 공부만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 그토록 학력의 수준이 높아지면서도 왜 사람들은 이전처럼 행복한 삶을 구가할 수 없는 것일까?
물도 차면 넘치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고로 이젠 지극히 현실적으로만 치닫고 있는 학문의 흐름에 대해 제동을 걸고, 다소 거시적인 측면에서 공부에 대한 흐름에 접근할 때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인문학 강의가 새로운 시대의 조류로 자리 잡고, 힐링이라는 단어가 사회의 트렌드가 되어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지나친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다.
성장 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조금씩이라도 차지할 몫이 있었다. 하지만 안정 사회로 접어든 작금의 상황에서는 가뜩이나 작아진 파이를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니 변별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경쟁의 논리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경쟁의 논리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공부다. 문제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공평한 경쟁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경쟁일 수 없다. 고로 애초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 경쟁 체제에서는 승부는 무의미한 것이다. 이제 대학이라는 학력은 더 이상 변별력을 상실해 버렸다. 대학원의 석, 박사 나아가 유학에 이르기까지 좀 더 고차원적인 차원으로 승부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이마저도 선택된 자들의 이야기지만 이런 고급고육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는 아니니 성급한 일반화로 우를 범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기업에서 능력보다 인성을 중시하는 풍토는 그만큼 능력의 인플레가 고착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처사일지도 모른다. 이젠 인성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인성은 그 자체로서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는 진정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 사회에서 이런 인간적인 가치를 볼 수 있는 혜안은 진정한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런 시점에서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은 획일화된 공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단서가 될 만한 책이다.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이라는 타이틀을 보면 다소 고리타분한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연상되기 쉽다. 먹고 살 생각은 하지 않고, 공자나 맹자만 읊어대던 선비들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일찍이 ≪허생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실학이란 개념은 그런 시대적인 한계를 인식한 선비들의 이용후생에 관한 학문이 된 지 오래되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 시대 14명의 공부 천재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서애 유성룡에서 우암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당대의 학자들은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조선의 위인들이다. 이들의 공부에 대한 철학은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나 ‘남을 이기기 위해 공부하지 마라’는 담헌 홍대용 선생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나아가 사회의 발전에 작은 밀알이 될 수 있는 큰 뜻을 품고하는 공부와 그저 자신의 출세와 안위를 위한 공부의 차이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자신의 성공과 업적을 위해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이렇듯 훌륭한 학자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좁은 의미의 공부가 아닌 넓은 의미의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책을 쓰고 반복해서 읽고 사색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억만 번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치열함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가치는 샘솟듯이 솟아올랐을 것이다. 근시안적인 공부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경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공부를 했을까?
율곡 이이는 자경문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했으며, 화담 서경덕은 사색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 과정 속에서 공부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성호 이익의 경우에는 마치 몰아치는 듯한 용맹한 공부 스타일을 통해 조선의 백과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저력을 구비할 수 있었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와 방식의 공부이지만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의 공부를 통해 공부의 달인이라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런 선현들의 공부를 답습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런 방법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식의 축적만을 공부의 원천으로 삼지 않는다. 수많은 정보를 구별하고 적용할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는 힘을 요구한다. 그런 첨병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인문학이고, 그런 인문학의 근저에는 우리 선조들의 공부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려고 하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애민정신, 홍익인간의 기치는 갈수록 삭막해지기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추종해야 할 가치로서 그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은 그저 고리타분한 선조들의 공부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성공과 출세 지향적이며 부를 열망하는 현 세태의 공부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공부를 통해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선조들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나아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궁극적인 공부임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선조들의 공부 방식을 습득하고, 나만의 고유한 공부 방식을 창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공부의 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삶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던 내게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은 그에 맞갖은 방법을 선사해 준 소중한 선물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