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진 / 알에이치코리아
알폰스 무하를 알게 된 것은 오래전이었다. 그와 관련된 화첩을 사기도 했고, 전시회도 들러보긴 했지만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은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완독 한다면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혼과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척한 한 예술가의 여정을 살펴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우진은 미술 이론가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쉽게 미술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는 <장우진의 종횡무진 미술 오디세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자!>, <사랑이 머무르는 그림> 등이 있다.
우선 알폰스 무하를 알려면 저자의 말에서 소개된 아르누보라는 당대의 스타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하가 활동했던 세기말의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로, 아르누보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었다. 아르누보는 흔히 여성적 모티브와 식물의 덩굴무늬를 떠오르게 하지만, 사실 직선적 간소함이나 민속 전통과 결합한 디자인까지 각국의 예술 중심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시대적인 예술 조류로 자리 잡고 있던 아르누보 스타일의 중심에 알폰스 무하가 있었다.
무하는 상업적 디자인뿐만 아니라, 회화, 드로잉, 의상 디자인, 북 일러스트, 사진, 보석과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여러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대중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알폰스 무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시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며 당대 가장 핫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은 각종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현대 예술 분야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무하의 소년 시절 그림인 <십자가에 못 박힘>이라는 그림을 보면 그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감수성은 종교적인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았는데 성당 안의 경건한 분위기,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화려한 문양 등이 예술적인 기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책에 소개된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 신과 성모마리아, 성인 등을 형상화한 그림들이 형형색색의 빛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알폰스 무하에게 예술적인 시야를 넓혀준 곳은 다름 아닌 예술의 도시 파리였다. 그는 파리에서 가난한 화가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 또한 여느 작가들과 다를 바 없는 곤궁한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편의 포스터는 그의 인생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1895년 새해 첫날, 파리의 광고 선전탑에 걸린 무하의 포스터는 곧 파리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폭이 좁은 장방형의 포스터는 실물 크기 여배우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했다. 당시의 원색적인 다른 포스터들과는 달리 파스텔 톤의 투명한 색채와 명암으로 채워진 포스터는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배경과 화려한 중세풍의 의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 포스터 한 장으로 알폰스 무하는 하루아침에 파리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 포스터는 바로 <지스몽다>였다. 이 포스터는 붙이는 족족 사람들이 떼어갔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알폰스 무하를 예술가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무하 양식이 형성되던 시기의 대표 작품으로는 <황도 12궁>을 들 수 있다.
눈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듯한 관을 쓴 여인의 섬세한 옆모습은 사람들에게 신비한 파문을 일으킨다. 굽이치는 머리칼, 머리 뒤로 륜을 이룬 12개의 별자리와 함께 그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뭔가 비밀스러운 말을 건넨다.
<황도 12궁>에 이어 <사계>, <네 개의 예술>, <과일과 꽃>, <네 개의 별>, <네 개의 꽃>, <네 가지 보석>, <하루의 시간> 등 무하 스타일의 절정을 이루었던 작품들은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흠잡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그만의 스타일의 보여준다. 그의 뛰어난 예술적인 감각은 시대를 앞서 간 광고계의 선구자로서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다. 코르셋, 자전거, 비스킷, 맥주, 와인, 럼주, 샴페인, 향수 광고 등 당시 사회적으로 부각되었던 상품들 중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없었을 만큼 그가 광고계에 미친 영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녀의 손끝에 쥐어진 담배는 긴 연기 자국을 남기며 타들어 간다. 상승하는 연기와 더불어 그녀의 머리칼은 부풀어 오르고 길게 목을 뻗어 고개를 젖힌 그녀는 담배의 연기 속에 황홀경으로 빠져든다. (욥 담배 종이 회사 광고 포스터 1886)
알폰스 무하의 일러스트 스타일은 그대로 북 디자인에도 적용되어 당시 출판계에 센세이셔널한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무하의 아르누보 스타일은 독보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의 디자인은 보석뿐만 아니라 비스킷 통, 부채, 접시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알폰스 무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파리 만국 박람회는 그의 스타일을 전 세계로 알리는데 공헌을 했고, 각종 박람회의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그 활동 영역은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그에게 무엇보다도 큰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인생 최대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슬라브 서사시>의 탄생이다. 화려함 대신 단순하고 강한 민속적 요소로 완성한 <슬라브 서사시>는 20년에 걸친 무하가 필생의 작업으로 완성시킨 대작이다. 그의 작품은 한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1936년부터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담은 3부작 <이성의 시대>, <지혜의 시대>, <사랑의 시대>는 비록 그의 죽음으로 미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미완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아르누보의 거장인 무하를 있게 한 요인은 다양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꼽는 것은 화가의 작업실, 취미이자 작품의 출발점이 된 사진, 당대 유명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향을 받은 상징주의 등을 꼽는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은 무하의 삶과 예술을 총망라한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는 측면도 있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원색의 화보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준다. 무하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남겼던 당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저자의 명철한 분석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좋은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은 깔끔하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책의 앞뒤표지에 적절한 크기로 배치했고, 한 작품이라도 더 그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무하 스타일의 탄생에 중점을 두고 거장의 작품을 화가의 출생과 연대기 별로 배치한 노력도 돋보인다. 부록에서는 그가 아르누보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나름의 이유를 선정하여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에필로그에서는 그의 예술적 성취가 현대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무하 연보를 통해 그가 걸어갔던 발자취를 세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스타일을 창조한 화가는 무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