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자전거

by 정작가

한때 자전거는 나의 아이콘이었다. 내 이십 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전거를 떠올릴 만큼 자전거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전거가 교통수단을 뛰어넘어 한 인간을 기억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된 것이다. 요즘은 자전거가 레저 활동이나 운동의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만큼 생활도 넉넉해지고, 운동부족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유용한 운동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는 늘 나와 함께 했다. 마치 친구와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은 다들 자가용에 목을 매는 시대에 꿋꿋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타고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감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지 자가용을 끌고 다닐 재정적인 형편이 안되니까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것뿐이지 어떤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역설적으로 자전거도 없고, 자가용도 없다. 그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가난한 청년 모습으로 회귀하고 싶은 건 가진 것은 없었지만 자유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빚으로부터의 자유.


자가용은 당시 형편에는 사치품이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자가용을 구입하긴 했지만 부채의 늪에 빠져든 여러 가지 요인 중에 하나가 자가용이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가용을 사기 전 자전거는 일종의 현실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것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의 방식을 취한 결과- 자가용을 산 것은 -스스로를 함정에 빠트리고 말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은 행동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은 비록 뚜벅이족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부끄럽다거나 창피하지 않은 건 현실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부단히 의식하며 살아온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하다 보니 그런 것들은 별의미가 없었다. 소신껏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위기에 봉착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절실하다는 것. 그것은 어떤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재정적 위기로 인하여 새로 산 지 얼마 안 되는 차를 중고매매상에 넘긴 적이 있다. 그때의 그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상실의 고통이라는 것이 물질에서도 이러한데 생의 고락을 같이하던 가족과의 이별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플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그 시절, 자전거는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였다. 그런 바로미터가 자가용의 구입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후의 결과는 참담했다. 자전거는 가난했던 청춘시절의 '나'를 드러내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그 거울이 깨지고 난 후 삶은 혼란스러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재정적으로 힘든 요즘 자전거가 생각나는 건 비록 지금보다 어렸지만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살았던 시절의 그 모습을 되새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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