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 / 열림원
얼마 전 현각 스님과 혜민 스님의 폭로와 화해의 과정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훈훈하게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아닌 스님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혜민 스님은 책으로 유명세를 떨친 터이기에 현각 스님의 질타는 더욱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수십 년 전에 석용산 스님의 에세이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라는 책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던 스님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연예인이든 종교인이든 상관없이 사회적인 책임이 따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주목해 볼 만하다.
<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구입한 지가 한참 된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번 사건으로 현각 스님에 대해 관심이 증폭된 것이 계기였다. 책을 구입하고서도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책을 읽을 이유가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님들의 저서와 유튜브 강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종교적인 차원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출간한 지는 20년이 넘었지만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책이었고, 영성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직관적인 판단은 책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출가하게 된 현각 스님의 이력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특히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한국의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처럼 이야기에 쏙 빠져들었던 것은 그만큼 내용에서 진실성이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톨릭 신자로 자라왔던 저자가 유년시절 성당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모순된 교리에 의문을 가지고 수녀님께 질문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수녀님, 예수님이 사랑이라면 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는 건가요?"
이런 질문은 개인적으로도 의구심이 들었던 사안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이교도를 학살한 가톨릭의 역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현각 스님은 이런 모순된 종교관에 회의를 느끼고 점차 가톨릭에서 멀어지게 된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①>은 이렇듯 유년시절에 형성된 종교관과 영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숭산 대선사를 만나게 되면서 출가하기 전까지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학창 시절에 접하게 된 키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는 철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들이다.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영성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참선수행을 통해 출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들 철학자들과의 정신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기존의 종교에 대한 의문, 철학적인 고민과 고뇌, 신학에 대한 공부, 숭산 스님과의 인연 등으로 결국 현각 스님은 출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①>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마도 가톨릭의 영향을 받고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갈망했던 저자가 불교로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와의 정신적인 만남을 통해 저자는 진리와 종교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오직 종교라는 한 가지 틀에서만 문제를 풀려고 했던 저자는 쇼펜하우어가 언급한 다음 대목에서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종교는 필요한 것이고 유익하다. 그러나 만일 인류가 진리를 발견해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장애물이 된다면 종교 자체를 파기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인간사회에서 종교라는 것은 해당 종교가 지니고 있는 직접적인 진리에 의해 평가된다기보다 간접적으로 인간을 이해시키는 능력과 관련해, 즉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믿고 있느냐' 하는 데 따라서 평가된다.'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저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규정을 가능케 했다.
'쇼펜하우어는 내가 진리와 종교를 일단 떼어놓고 사고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런 생각은 소위 몸과 마음을 담았던 가톨릭에서 사제와 수도자가 종교를 방어하는 대답만을 했지, 진리를 발견하는 데 대한 관심은 없었다고 술회하는 장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접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 저자에게 불교는 미신이나 사교의 하나이며 어쩌면 가장 배척해야 할 종교라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비관주의적인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불교에 대한 찬사는 저자가 인용한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내 철학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인 불교에 그 공을 돌려야 한다.'
고 말이다.
저자에게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또 있다. 바로 미국의 위대한 철학자 에머슨이다. 그가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한 축사는 '신학대학원 축사'라는 고유명사로까지 명명될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예수님은 신이 아니다. 단지 우리 인간들이 그를 신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자신 각자가 갖고 있는 본성, 진리, 지혜다. 인간들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 즉 우리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대상으로 만들어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은 우리의 실수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지만, 그는 단지 인간이다. 나와 여러분들처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이 연설은 당시 교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전적으로 이 연설을 긍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보아 온 종교인들의 수많은 일탈과 모순된 교리, 종교전쟁 등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만행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①>는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읽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도끼와도 같은 책이다. 카프카는 책은 내면의 얼음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와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책이 그렇다. 한 종교를 40년 이상 신봉했던 사람에게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컸다. 이건 단순히 종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종교조차도 그토록 힘주어 강조했던 진리에 대한 가치의 문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종교에 대한 신념이 확 달라질리야 만무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책을 읽고서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저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한 번쯤은 저자가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고 성찰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설사 저자의 주장과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이전 코로나19 사태로 방역에 우려를 보내고 있던 상황에서 특정 종교시설이 보여주었던 무모한 행태를 회고해 보면 종교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독교의 가르침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계명이 종교활동이나 선교를 빌미로 방역 공백을 만들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접할 때면 과연 종교라는 것이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종교인들에게는 성찰을, 비종교인들에게는 새로운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