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일기
시험관 이식을 통해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두줄이 너무 신기했고 하루하루 진해지는 임테기를 볼 때마다 나의 행복 지수도 두배씩 상승했다. 피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과 난황이라는 것을 보았다. 아! 드디어 나도 초음파 사진이란 것을 받는구나!!
행복함도 잠시.. 집에 와서 화장실을 다녀오니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의 담당의는 퇴근을 한 시간이었고 다른 의사는 내가 이미 최대 처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도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이틀 뒤 출혈이 점점 심해져서 동네 산부인과로 갔다. 초진 환자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진료를 보기 전에 내 시험관 이력부터 모든 것을 줄줄 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니 한 시간이나 지나서 의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최대 처방이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난임 병원에 전화를 걸어 간호 상담실의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엉엉 울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냐 물었다. 선생님은 어서 병원에 오라고 와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뵙자고 했다.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지하철을 타고 난임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고 담당의사를 만났다. 초음파에 아기집도 난황도 잘 있고 아무런 피고임도 없는데 어디서 피가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최대 처방의 한 수 위인 "타이유"를 맞을 수 있었다. 질정 두 개 푸롤루텍스 주사 한 개에서 오늘부터 주사를 하나 더 추가해 맞기로 했다. 추가된 주사약을 잔뜩 손에 들고 뱃속에 있는 난황과 아기집이 힘내 줬으면 해서 야채 가득인 서브웨이 샐러드도 사서 집으로 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심상치 않은 배 통증이 시작됐다. 생리통 이상의 통증... 그리고 출혈도 엄청났다. 화장실을 갔다가 하얀색의 점막을 봤다. 그게 무엇인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아기집이 배출된 것을 느꼈다.
통증 없는 밤... 배도 고요해졌고 마음은 더없이 헛헛해졌다. 폭풍우 같던 2개월이 지났다. 채취부터 이식까지 그리고 유산까지... 일주일 뒤 병원에 가니 자연적으로 모든 것이 다 배출되어 수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네라고 생각했다가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나의 첫 시험관 도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태명을 너무 일찍 지은 걸까... 마음의 상처가 오래도록 갔다. 남편이 축하한다며 전해줬던 꽃다발도...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초음파 사진도 보기가 힘들었다. 지나가는 날짜마다 그때 그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지금 몇 개월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일반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한번 봤다. 그간의 이력을 적을 때 임신 횟수, 유산 횟수를 적는 칸이 있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0을 적었는데 이제는 산부인과에 이 유산의 이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험관 1차의 성공은 로또라고 불리던데... 난 역시 로또에 당첨될 팔자는 아닌가 보다. 길지 않았으면 좋았을 나의 난임 이력서는 이렇게 한 줄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