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2차 PGT-A 검사 성적표 받는 날

난임일기

by 라즈베리

채취 후 10일이 지났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매일 아침마다 맞았던 주사도 없고 그저 마음 편히 기다리면 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 열흘의 자유를 즐길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나 밤에 눈을 감을 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제발 PGT-A 통과배아 하나라도 나오게 해 주세요" 배아 생각이 날 때마다 짧게라도 틈틈이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해야만 나의 간절함이 저 하늘에 닿아 나를 불쌍히 여긴 신이 통과배아를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드디어 PGT-A 결과를 듣는 날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손이 떨린다. 대학 합격자 발표날, 면접본 기업의 합격자 발표날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쫄보가 다 됐다. 병원 갈 준비를 다 마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이미 결과는 다 나와있는 거야. 이제부터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 최선이랄 것도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기다렸으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말자"


진료실 앞에서 주사기가 든 가방도 없이, 초음파 오더도 없이 기다리려니 뭐라도 빼먹고 온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띵동! 드디어 긴 기다림 끝에 진료실 안내판에 내 이름이 떴다.


똑똑.


"어서 오세요 라즈베리님"


"안녕하세요" 긴장된 마음이 얕은 호흡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나타났다.


"자 우리 이번에 채취 17개 잘했고요. 어디 아프시거나 불편한 곳은 없지요?"


"네. 선생님 통과배아가 있나요?" 선생님을 재촉했다.


"17개 채취하고 그중에 3개가 5일 배양이 돼서 PGT 검사를 보낼 수 있었어요. 어디 보자... 3개 중에 3개 다 통과되셨네요! 축하드려요, 라즈베리님 나이에서 이런 결과는 드문데 아주 좋은 결과예요!"


"감사합니다!" 결과를 듣기 전보다 더 심장이 쿵쿵거렸다.


"선생님, 혹시 이식 전에 자궁경도 가능할까요?"


"네 그럼요 그럼 다음 생리 시작하면 자궁경을 한 후에 이식하기로 합시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3개를 보내서 3개다 통과라니!!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이식을 하고 싶었지만 이 소중한 배아를 놓칠 수 없다. 자궁경으로 이식의 시기가 한두 달 늦어지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 소중하게 이식하고 싶었다. 배아 하나당 검사비가 31만 원이라 백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을 결제하면서도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사실 오늘은 난임 병원을 다닌 지 1년 하고도 하루가 된 기념하고 싶지 않은 기념적인 날이다.


처음 병원에 발을 디딘 날이 기억난다. 어리바리하게 병원 어플도 사용할 줄 몰라 두리번거리고 다녔던 그날의 나는 이렇게 1년 동안 열심히 병원에 다닐 미래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난임 생활을 시작한 후 매번 결재하는 병원비에 집 밖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조차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에 오천 원쯤이야 내 행복으로 쓸 수 있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다가 하루에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로 타협을 봤지만 이제는 얼마가 되었든 간에 만보 걷기 후 공원에 앉아 마시는 그 커피 한잔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철마다 옷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꼭 사야 하는 옷은 가장 유행 타지 않을 디자인을 고르고 골라서 몇날 며칠을 장바구니에 담아 둔 후에 사게되었고, 외출하는 날마다 똑같은 옷을 입게 되었다. 어쩌다 옷을 좋아하는 여동생이 더 이상 안 입는 옷들을 추려 놓는 날이 있다. 거기서 가장 나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골라온 날에는 횡재라도 한 것 같았다. 돈으로 압박을 받기 시작하니 숨 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되고 때에 맞춰서 배가 고픈 것도 짜증이 일었다.


불과 1년 전의 일 중간에 마시던 아이스커피 한잔, 월급날 마음껏 즐기던 저녁 한 끼가 너무 그리웠다. 이렇게 초라한 일상을 보내며 변해버리 내 생활을 돌이켜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가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많았다. 1년 넘게 일상을 모두 놓아버린 채 난임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간이 답답하고 힘들지만 이 길이 내가 아가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오늘도 나는 모든 것들을 꾹꾹 누르며 괜찮다는 가면을 쓴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두운 터널 가운데 그나마 오늘처럼 결과가 좋은 날에는 내가 쓴 가면 사이로 살랑살랑 상쾌한 바람이 들어온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진다.


돌아오는 달에는 자궁경을 하고 그다음 달에 PGT-A 통과배아를 이식하면 나도 이제 이 난임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때가 되면 나도 스타벅스에서 마음 편히 커피 한잔 쭉 들이키리라! 아니 임신이 되면 커피는 못 마시겠지? 그럼 피지오 쿨라임 한잔 쭉 들이키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나를 다독이고 싶다. 그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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