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2차 채취 - 큰 딸 노릇 쉽지 않다.

난임일기

by 라즈베리

두 번째 채취 날.

한번 해봤다고 이제는 절차가 익숙하다. 다만 첫 번째 채취와 달라진 것은 오늘은 남편 대신에 엄마가 함께 병원에 간다. 남편은 해외에 체류하고 있어서 저번 채취에 얼려 놓은 냉동정자를 사용할 예정이다. 혼자 오고 싶었지만 수면마취 때문에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엄마와 함께 왔다.


나는 강인한 첫째 딸이다. 엄마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나와는 다르게 외갓집 막내딸로 자라온 엄마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가엾은 큰 딸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엄마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지하철에서부터 세상 모든 걱정을 짊어진 얼굴을 한 채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불효녀로 보겠지만 내가 앉아 가는 게 엄마 마음이 훨씬 편할걸 알기에 얼른 앉으라고 성화인 엄마에게 못 이긴 척 지하철 자리에 앉았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친구 같은 딸이 되어주고 싶지만 내 시선은 핸드폰에만 향해있다. 온갖 주사를 맞고 잔뜩 커진 난포로 인해 배는 모래주머니를 닳아 놓은 듯 묵직한 데다가 혹시나 이틀 사이에 조기배란은 안되었는지 오늘 채취에 난포는 과연 몇 개나 나올지 내 머릿속의 복잡한 사정으로 엄마의 불안함과 걱정을 덜어 줄 여유가 없다.


엄마와 나는 집 앞을 나선 이후로 별말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원이 이렇게 크고 좋게 생겼니? 엄마는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엄마 화장실 지금 다녀와. 그리고 나 다시 나올 때까지 여기 꼭 앉아 있어. 심심하면 여기 꽂혀있는 책보거나 병원 안에 산책하듯이 돌아다녀도 돼. 근데 여기로 꼭 돌아와서 있어야 돼. 알겠지? 혹시 무슨 일 생기거나 길 잃어버리면 움직이지 말고 나한테 전화해. 채취 끝나고 나오자마자 확인할게."


엄마가 그동안 다녔던 병원과는 너무도 달랐던 난임병원.

그렇게 어린아이에게 당부하듯 내가 다시 나왔을 때 꼭 여기 있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하고 엄마를 남겨둔 채 나는 난자채취를 하러 들어갔다.


난자 채취를 할 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수면 마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내가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채취를 시작할까 봐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며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주변 간호사 선생님께 알리려고 노력한다.


"환자분 이제 약 들어갑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 아직 잠 안 들었어요!!')


수술실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진다. 폭신한 침대와 따뜻한 담요이불 그리고 묵직하게 배 위에 올려진 모래주머니. 드디어 채취가 다 끝났나 보다. 상쾌하게 푹 잔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 하나하나 움직여보고 팔도 움직여보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보니 어느새 간호사 선생님이 내가 누운 침대의 커튼을 제치며 들어오셨다.


"라즈베리님 일어나셨어요~?"


"네"


"거즈 빼드릴게요. 조금 불편하실 수 있어요"


난자 채취 후 그곳에 넣어놓은 상상으로는 100M 정도 되는 것 같은 거즈를 힘차게 빼주었다.


"거즈 1개 제거했고요 출혈도 없으세요. 조금 더 쉬고 계시면 귀가 안내 도와드릴게요."


거즈도 빼고 배에 올려두었던 모래주머니도 없어지고 나니 생리통과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쑤시게 아프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항문통이 있다. 갑자기 찌릿하고 항문이 3초간 아프다가 다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몇 번 반복되었다. 더 아파지면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했지만 몇 번 아프다가 사라져서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라즈베리님 오늘 난포는 17개 채취되셨고요. PGT-A 하시기로 했으니 10일 후 예약된 상담 시간에 맞춰서 오시면 결과 들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첫 번째 채취에서는 난포 19개가 채취되고 9개의 냉동배아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PGT-A를 보내기 위해 채취개수를 늘리려고 약도 더 썼는데 17개의 난포가 나왔다. 살짝 실망했지만 첫 채취 이후 시간도 지나고 했으니 나이가 깡패인 이 세계에서는 이 정도도 괜찮다고 실망하지 말자며 나를 위로했다. 제발 PGT-A통과 배아 하나만 나오길!!!


쑤신배를 부여잡고 옷을 갈아입으며 시계를 보니 2시간 정도 지난 것 같다. 아이고 우리 엄마 기다리느라 힘들었겠다. 엄마 생각에 발길이 분주해졌다.


보호자 대기 장소에서 걱정스러운 눈빛 한가득으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

"잘했어? 배는 괜찮아?"

"어~ 아무렇지도 않네~"

남편이 왔다면 나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걷기 힘들어라고 엄살을 피웠을 테지만 엄마에겐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배고프지? 우리 밥 먹고 갈까? 아니면 커피 마실까?"

"난 괜찮아. 너 편한 데로 하자"

"그럼 우리 미역국 먹고 커피 마시자"


평소에도 걱정 많은 엄마가 수술실 상황 전광판에 뜬 딸의 이름을 보며 얼마나 마음 졸이는 두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갔다.


"엄마 나는 안에서 푹 자고 나왔어. 그래서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가 바깥에서 기다리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아냐 우리 딸 고생해서 어떡하면 좋아. 이번만 해보고 안되면 그냥 둘이 살아. 애 없는 게 속 편하고 좋아."


우리 삼 남매를 낳은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늘 애 낳지 말고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말했다. 엄마가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봐왔고 지금도 이렇게 못난 딸 때문에 마음고생 중인 엄마를 보면서도 난 왜 자식 없는 삶을 꿈꾸지 못하는 걸까?


"난 진짜 괜찮아. 사람들이 시험관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할만해~"


반은 진심이면서도 반은 거짓말인 말을 해본다. 주사를 맞아서 또는 채취를 해서 몸이 힘든 것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이 시험관의 성공 여부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견딜 수 없이 힘들고 두렵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삶과 전혀 상상도 해보지 않은 삶 가운데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디로 발이 디뎌질지 모른 채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이 순간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오늘 채취가 마지막 채취이기를 그리고 10일 뒤 PGT-A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제발 한 개의 통과배아가 있다는 말을 꼭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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