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태로운 존재
남자 간호사의 수가 매 해 늘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 광풍만큼은 아니지만 불확실성 가득한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안정성이라는 강점이 도드라진 결과로 보인다.
인간은 나서 자라고 아프다가 죽는다. 이 섭리 사이에 끼어있는 직업군은 멸할 수가 없다. AI의 발전에 속도가 붙었고 여러 직업들이 존폐위기에 놓여있지만 육신을 놀려 수행하는 일들은 대개 그 문제에서 안전하다.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의 보람과 노동강도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간호사는 꽤 괜찮은 선택지로 보인다.
나는 이리저리 다니며 간호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찾아오는 현실의 압박에 간호의 녹을 받아먹곤 했다. 모든 발자취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지만 언제나 목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짤막하면서 다양한 전적을 가진, 누더기 6년 차 간호사가 되었다. (이른바 조각경력은 이 업계에서 꽤 흔한 일이다. 나는 이 문제 역시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기회가 닿는 대로 조각경력과 관련된 이야기도 풀어보려고 한다.)
뜬금없이 내 이야기를 꺼낸 건 남자 간호사의 증가가 긍정적인 결과로 연결될 지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탓이다. 길지 않은 시간 겪은 현장은 늘 인력부족에 시달렸다. 해마다 수많은 인원이 배출되지만 유휴 인력이 많다는 사실은 무언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표적인 오류가 바로 태움 문화다. 태움이 남자 간호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경험상 역학적으로 남자에게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와 같이 간호사 부족에 시달리던 응급실에 막 면허를 취득한 남자 간호사가 입사한다. 사회 초년생이지만 군대를 다녀온 신규는 요령도 없이 시키는 족족 달려든다. 프리셉터에게 트레이닝받는 중이기에 실질적인 간호 업무보다는 잡무에 가까운 일들이 많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맡을 뿐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수간호사 입장에서 그간 박스를 가져오거나 기구를 옮기는 일에 언뜻 싫은 티를 내던 올드들과 달리 신규에게 시키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수간호사도 인간인지라 본인의 말을 잘 따라주는 신규를 더 챙기게 된다. 챙기는 마음 안에는 고마움과 다행감도 있지만 그만두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다. 트레이닝이 끝나고 신규 딱지도 뗐지만 자연스럽게 육체적 물리적 노동은 남자에게 몰린다. 박스 옮기는 정도에서 주취자를 핸들링하는 일도 암묵적으로 남자 간호사가 우선적으로 맡는 일이 된다. 그런 일들을 남자가 맡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대개 그 노고는 드러나지 않는다. 여전히 수간호사는 남자 간호사에게 신뢰를 보낸다. 올드들은 수간호사의 신뢰를 '편애'로, 숨어있는 노고는 '남자라서'로 오해한다. 남자 간호사는 수간호사와의 면담을 통해 힘듦을 토로한다. 수간호사는 올드들을 쥐 잡듯이 잡는다. '괘씸함'이 더해지면서 과정은 반복된다.
예상할 수 있듯 예시는 나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나는 2년여의 응급실 생활 중 이 고난을 극복하는 데에 1년 반 이상을 투자해야만 했다.
물론 모든 수간호사가 남자 간호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 간호사가 힘쓰는 일에 동원되거나 주도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해묵은 젠더갈등 따위가 아닌 것이다. 여초 직장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용의자 모두 여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업계에서 남자 간호사의 존재가 낯설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방인에 머물고 있음을 나는 피부로 느꼈다. 마치 아마존 부족이나 원더우먼의 고향처럼 여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 주재하는 대사관 같달까. 그 위치 탓에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겪어야 하며, 현재도 그리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하면 튕겨져 나가는 현실에서 병원은 다음 스텝을 위해 버텨야 하는 공간에 가깝다. 학부시절 초청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연사는 남자 수간호사셨던 걸로 기억한다. 강연의 내용 역시 남자 간호사로 버텨온 그분의 삶이 주된 내용이었다. 남자 수간호사로 최초였는지 유일이었는지, 아무튼 초청의 배경은 그분의 놀라운 존재 덕분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자 간호사에게 병원 내 간호사로 평생을 보내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조금 못되게 말하자면 간호사 면허를 가진 남자의 미래는 병원에 없을 확률이 높다. 구조적 문제와 현실의 벽은 남자 간호사를 늘리지 못하고 간호사 면허를 가진 남성만 늘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