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자고 다짐한건 신변잡기로부터 시작해 이 사회를 말해보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늘 하루를 읊조리는 내밀한 소회들은 16절 노트에 담기고 있기에, 이 공간에서는 일기와 칼럼의 중간정도 되는 글들을 기고할 계획이다. 당장 자신있게 펼쳐낼 생각들은 경험에서 비롯되기 마련이고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제시하는 단어가 아직은 간호사인 만큼 간호에 대한 말들로 운을 띄웠으나 조금은 뾰족한 말들로 채워진 듯 보인다. 고로 남자로서, 간호사로서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이 편으로 마치고 이후 의료와 간호 관련 이슈가 있을때 다시금 언급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간호사는 대외적으로 취업이 잘되고 적지 않게 버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취업이 잘된다는 이야기는 지속가능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이전 글들에서 충분히 피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벌이에 대한 이야기로 올바른 인식을 도모할 차례다.
병원의 병상 수에 따라 층위가 나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동네 병의원은 1차 의료기관, 00병원 식의 종합병원은 2차, 00대학병원은 3차로 분류된다. 병상 수가 많을수록 환자가 많고 중증도는 높으며 업무가 고되다. 당연하게도 층위에 따라서 급여도 차이가 난다.
나는 종합병원에서 임상 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당시 연봉은 4000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은 대학과의 연계가 없어(cf. 상단에 00대학병원은 3차로 분류한다고 했으나 몇몇 지방의 대학병원은 2차로 분류되는 곳도 있다. 종합병원의 규모지만 대학과 연계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학연금같은 이른바 세금 공제 외에 추가로 공제되는 부분이 적다. 거기에 3교대에 따른 야간근무 수당이 추가로 붙는다. 연봉 4000의 피부양자 없는 1인 기준으로 실수령액 계산기에는 290만원 남짓으로 조회되지만 실제 계좌에 찍힌 숫자는 평균적으로 330~340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간 근무의 수에 따라 지급액의 변동이 크지만 300 밑으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종합병원의 상황이 이럴진대 3차 병원의 급여는 그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동기들과 선후배들에게 들은 바로는 400만원이 조금 안되는 수준이었다. 2017년 당시 평균 연봉은 3475만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회 진입 1년차에 7~9분위에 해당하는 소득을 거둘 수 있으니 간호사라는 직업의 벌이가 꽤 많다는 말은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맹점은 있다. 먼저 급여의 구성 형태가 기형적이다. 일반적으로 간호직의 기본급은 우리가 인식하는 일반적인 기업의 사원들에 비해 낮다. 나는 운 좋게도 간호를 토대로 일반 기업체도 몇 번 다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경험들에 비추어 보면 일반 기업체의 급여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70~80%였고 병원의 간호사는 기본급의 비중이 50~60%에 그쳤다. 교대근무, 야간근무, 특수파트에 대한 내역들이 각각 수당으로서 꽤 많은 액수의 급여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 고된 근로환경에 놓여 있었던 덕분에 그 정도의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그 수당들이 직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처음 임상에 진입한 종합병원은 인력이 부족해 환자 이송까지 간호사가 도맡곤 했다. 정해진 수의 간호사가 예상할 수 없는 수의 환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식사나 용변같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이틀 정도 입은 근무복의 등판에는 소금이 묻어나왔고 그나마 외래가 운영하는 주중 데이 근무가 아니고서야 무언가를 취식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에서 용변을 참아 방광염이 생기는 경우는 흔하다. 물이나 커피같은 액체를 멀리하는 사람이 부서마다 너 댓명은 있는데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서다. 초과 근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근로계약서에 각각의 시프트 근무는 7시부터 16시, 13시부터 22시, 21시부터 8시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보다 1시간 빠르게 출근해야 뭔가를 세고 점검하는 등의 일과를 해결할 수 있었고 교대 시간에 환자라도 이송될때면 기본적인 처치나 차팅은 오롯이 전임자의 몫이었다. 그 분업은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아서 후임자가 '내가 맡을테니 퇴근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섭섭하거나 미울 일은 없었다. 모두가 오버타임을 자연스러운 일이자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은 병동이고 어디고 할 것 없이 대부분이 겪는다. 일한만큼 버는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와도 같지만 병원에서는 통상 지켜지지 못한다. 수치로 드러나는 일 평균 2시간의 연장근로와 수치화할 수 없는 신체적 애로사항들이 수당에 온전히 담길거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그러니 간호사 누구도 자신들의 급여가 많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다고 느끼는 것이다.
노동의 강도는 또 어떤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신체적 손상으로 한껏 예민해진 상태다. 본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고된 법인데 예민해진 사람들에게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은 그 다음 단계에 있다.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일시적으로 예민하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조금 살만해질 때 고객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숱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이 병원에 쓴 돈이 얼마며 몇 년을 다녔고 어느어느 교수랑 친하다면서 갑질은 시작된다. 치료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할 검사에 대해 과잉진료라며 '깽판'을 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의료와 서비스가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간극을 메우는 고통은 간호사에게 그대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고통 또한 노동의 일부로 치환한다면 그 강도와 급여의 수준이 비례하는지에 대해 나는 확언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상한선의 존재다. 사실 이 글을 쓰게된 가장 큰 동기이기도 한데 간호사라는 직업군의 연봉은 일관되지 못하다. 물론 병원에도 호봉의 개념은 있는지라 해마다 급여는 오른다. 문제는 그 역시 병바병(병원by병원)의 영역이라는 점, 일정 구간을 넘기 전까지 혹은 일정 구간을 넘은 후에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점이다.
위 사진은 네이버에 연차별 간호사 연봉을 검색했을때 나온 AI의 답변이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과 견주었을때 어느정도 근사한 수치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가? 5년 차와 10년 차 이상의 연봉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나의 사례를 더 들어보자.
https://www.dailymedi.com/news/news_view.php?wr_id=929378
위 링크는 금년 9월에 쓰인 데일리메디의 기사다. 이른바 빅5(삼성,아산,서울대,성모,세브란스)에 속하는 서울대병원의 20년차 간호사의 평균 연봉이 6300만원에 그친다. 위 AI 답변에 기초하면 5년차의 연봉과 20년차의 연봉이 같은 셈이다. 실제로도 현장에서 고연차의 급여보다 신규가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위에서 문제로 지적한 '수당이 이루는 급여'에 더해 희박한 연봉 상승이 만드는 촌극은 고연차들로 하여금 '현타'가 오게 한다.
한 켠에서는 '누구누구의 어머니 혹은 친지분이 몇 년차 간호사인데 연봉이 1억이 넘는다더라' 하는 말들도 들린다. 물론 연봉이 1억 이상이거나 그에 가까운 간호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높은 확률로 부장급, 혹은 큰 병원의 수간호사일 가능성이 높다.
2022년 심평원 자료 기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더한 전국의 병원 수는 372개로 나타났다. 보통 3차병원의 병동과 부서는 35~40개 정도이고 종합병원은 그보다 적은 20~25개 수준에 그친다. 보통 한 층에 두 병동을 두는 경우 두 병동을 같이 관장하는 수간호사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어림잡아 병원당 20명 남짓의 수간호사가 있고 그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간호사는 10명 미만이라 가정할 때 전국의 부장급 수간호사의 수는 약 8000명 남짓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면허를 딴 나의 면허번호는 36XXXX였고 해마다 4만여명의 국시 합격자가 매 해 배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전국의 간호사 총원은 60만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60만명 중에서 8000명만이 연봉 1억원의 고지에 오른다는 얘기다. 앞선 글들에서 태움 문화가 간호사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해왔는데 그 태움을 뚫고(!) 능력을 증명한 뒤에 병원의 고위직에게 호감을 산 1%만이 8000명 안에 들 수가 있다. 그러니 연봉 1억의 1%는 연봉 20억의 나영석 PD처럼 한 직업을 대변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연차를 먹기도 전에 못살게 굴어서 나가거나 악으로 깡으로 버텨 고연차의 평간호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태의 근간에는 높은 초임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액 연봉을 정체성으로 가진 몇몇 직업을 제외하고(이른바 사자 전문직 혹은 반도체, IT 등) 한 개인이 근로소득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숏폼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연봉에 대해 묻는 영상을 보게 됐는데, 여의도와 홍대 한복판에서 응답한 사람들의 연봉은 대부분 3000대에 머물렀다. 그 중에는 대기업의 계열사도 있었다. 결코 많지 않은 급여에도 그들이 기를쓰고 달려드는 이유는 아마 적지 않은 연봉을 수령할 미래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능력을 키우고 성장했음을 인정받는 의미로 상승된 연봉을 수령한다. 반면 간호사의 급여는 어떤 의미에서 시장이 형성한 가격으로 보인다. 신규간호사는 그 어떤 능력도 입증하지 못했지만 면허 하나만으로 꽤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능력을 증명해내는 길은 요원하다. 연구에 참여한 논문이나 수술증례가 곧 커리어가 되는 의사와 달리 간호사가 논문에 참여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간호사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지는 않는다. 병원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인력은 간호사지만 간호사의 기여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펑크가 나지 않게 그 자리에 있는 것, 특수한 상황을 유려하게 넘기는 것이 곧 병원이 바라는 간호사의 능력이기에 오래 버티는 것이 능력의 증명과 비슷하다. 면허의 유무와 존재의 시간만이 평정의 척도인 현실에서 몸값은 계속 시장가격으로 매겨진다. 연봉 상승의 기울기는 점차로 완만해지기에, 오래 버티는 일은 고되거니와 손해다. 그러니 '탈임상은 지능순'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이다. 높은 초임에 공회전에 가까운 상승률이 더해지면서 이 직업군에 투신한 미래를 그릴 수 없게 하고, 단타를 치는게 이득인 구조를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앙값이 같을거라면 초임을 낮추고 상승폭을 늘려서 간호사로서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편이 만연한 의료인력 부족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연차 외에 간호사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