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3595035?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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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초기부터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노란봉투법이 시행을 앞두고 다시 들끓는 모양새다. 연 이틀 노동 관련된 이슈가 조간 사설에서 다뤄졌는데 일정 부분 공통된 부분이 있는 듯 보인다. 법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노동자로서의 대표성도 띄지 못하는 나로서는 법안의 시시비비에 대해 논할 자격이 모자라지만 잠시나마 보건관리자로 머물렀던 건설현장의 기억을 되살려 사용자와 근로자의 현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꼭 4년 전 이맘때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건설사의 보건관리자 자리를 제안받았고 기회다 싶어 충남으로 향했다. 평택부터 서산, 당진에 이르는 지역, 그러니까 서해를 맞닿은 국토 중심부 언저리에는 OO단지가 굉장히 많다. 내가 당도한 곳 역시 국가산업단지였고 역 내를 도보로 이동하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살을 에는 바닷바람에 몇 시간이고 걷다보면 사지의 말단은 굳기 일쑤였고 노곤함에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육체 피로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멍해질 겨를조차 주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 덕분이었다. 마치 육신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듯 피곤함을 날리는 자극들이 계속됐는데, 적어도 내 경우에서 자극들의 주된 원천은 협력업체였다.
잠시 여담으로 건설 현장의 위계에 대해 짚고 가자면, 어떤 건물이 필요해 건설사에 건설 및 공사를 의뢰하는 발주처가 있고 발주처로부터 의뢰를 받은 건설사는 원청이 된다. 건설사가 발주를 내는 경우도 있기에 꼭 건설사가 원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원청이라고 하면 이름을 들어본 듯한 도급 순위 상단의 건설사가 해당된다. 건설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필연적으로 부수 작업들도 생겨난다. 수 개월, 수 년간 발주처와 원청의 직원들이 머물 사무실과 공학적 시험을 위한 시험실의 축조도 있고 자재를 싣고 올 트럭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일 등이 포함된다. 이런 일들은 대개 본 공정 전에 이뤄지거나 공정이 이뤄지는 와중에 병행되고 짧은 시간 안에 끝나기에 본 공정에 비해 자잘한 일로 취급된다. 또 본 공정이라 할지라도 건물을 올릴 땅의 지반을 다지는 터파기 작업, 기둥을 박아 넣기 위한 항타 작업 등 여러 세분화된 작업들이 있는데 그 역시 원청이 모두 도맡기에는 비용 과 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원청은 그 일들을 도맡아줄 협력업체, 즉 하도급사에 도급을 준다. 정리하자면 원청이 하도급사를 관리하고 원청을 발주처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협력업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이었던 이유는 쉬이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지금이야 감기 정도의 취급이지만 당시에는 역병으로서의 위상이 대단했기에 작업자 중 한 명이라도 확진된다면 현장이 역학조사를 위해 문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마침 다가온 설 연휴는 현장 재량으로 쉬는 날을 포함하면 6일에 이르는 긴 연휴였다. 발주처에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확진될거란 우려가 있었고 현장이 닫지 않기를 바랐다. 연휴가 끝나는 날로부터 48시간 이내의 PCR 검사 결과를 제출한 뒤에 출근하는 것으로 우리 회사 소장에게 제안했고 '너가 보건관리자니까 너 뜻대로 하자'는 답을 들었다. 일주일 여의 시간이 남았었기에 나는 5곳의 협력업체 소장과 관리자에게 문자를 날리고 이런저런 회의와 점검으로 마주칠 때마다 '검사 받아야 하는것 아시죠' 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것도 모자라 전권을 약속받은 즉시 무려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다. 공문 안에는 '유효한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늦어도 연휴 3~4일차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상세히 포함됐다. 신규 작업자 서명에 방역 교육과 지시에 따른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업체별로 소속 근로자들의 검사확인증을 갈무리해 보내줄 것도 요청했다.
모든 장소가 그렇겠지만 인간의 물리력이 주된 동력으로 사용되는 사업장은 텃세가 특히 거칠다. 무경력 애송이가 귀찮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현실이 마뜩잖았던 모양인지 철저한 계획으로 코로나를 틀어막겠다는 야심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복귀 전 날, 그러니까 5일차가 되도록 어느 업체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원청인 우리 사무실 전원은 들들 볶아댄 덕에 검사 결과지를 전부 확보했는데 발주처 역시 함흥차사였다. 직접 업체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출입이 안된다, 작업 중지를 거론하자 그제서야 연락이 닿기 시작했다. 몇몇 작업자들은 그 날 오후 검사를 받았고 다음날 결과가 문자로 도달하기 전까지 출입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마치 관객이 호응하지 않는 무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심지어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현장이 닫으면 발주처와 원청도 손해지만 노임이 나오지 않으니 작업자들 역시 손해다. 귀찮은 일이겠지만 다 좋자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준비한 절차에 일단 비협조로 시작하는 행태가 이해되지 않았고 말끝마다 '기성 막을것'이라며 엄포를 놓던 안전관리자 과장님의 태도가 조금은 이해됐다. 그렇다고 매 순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인게 그 큰 현장에 안전관리자는 세명, 보건관리자는 나 하나였고 실시간으로 모든 영역의 관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술 더 떠 압력을 가하는 방식의 관리에 반발하는 경우도 숱했다. 위에서 검사를 늦게 받아 늦게 결과를 받은 작업자들이 출근하고 나서 해당 작업자들이 소속된 노조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노동권 제약 아니냐, 이 현장에 우리 소속 꽤 많은데 인력 충분하시냐, 기성 승인 늦어지면 자재도 늦게 들어올 것이다 같은 말들을 남기고 확성기가 너댓개는 달린 검정색 카니발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후에도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작업중지가 발동될 때마다 이런저런 노조의 카니발은 기세등등하게 찾아왔다. 내가 현장에 머물렀던 기간은 몇 달 정도의 찰나였는데 그 기간 나는 저 자동차를 다섯번 볼 수 있었다.
노동쟁의는 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다.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행동이라는 취지와 목적에 흠결은 없다. 권리는 동시에 책임이다. 정당한 대우에는 정당한 노동을 이행할 책임이 따른다. 이 이치는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명하다.
도급으로 진행되는 사업장에서 원청은 정당한 노동을 이행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시에 관리라는 노동을 통해 발주처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다. 큰 의미에서 원청은 관리의 역할을 맡은 노동자의 역할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에는 원청이 사용자의 한 축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용자는 돈을 주고 결정을 내린다. 내 경험상 원청은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지도, 단독으로 협력사에 대금을 지급하며 계약을 할 수도 없었다. 원청의 모든 자취에는 발주처의 허가가 필연적이다. 숱한 발주처의 요청을 군말없이 이행하는 것은 그것이 원청이 제공하는 정당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원청은 주체라기보다 객체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노란봉투법의 합리성에 대해 쉬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거창하게 국가 경제나 건설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따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권리와 책임이 등치되지 않도록, 노동자가 사용자로 인식되도록 변경하는 일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산재를 막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의 덧없음은 위의 카니발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갈음할 수 있다. 저 사태에서 '제 때 검사 받았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원청 소속 뿐이었다.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죽어도 마땅하다는 말이 아니다. 애써 가정할 필요도 없이 안전 수칙을 지키면 될 일이다. 산재의 현장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하는 원청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지만 대체로 안전 조치들은 작업의 능률에 있어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손에 잡히는 물체 대신 인증받은 말비계를 사용하라느니, 안전 고리를 풀었다가 체결했다가를 반복하라느니 하는 제약들은 마치 작업방식의 자율을 억압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 분이면 끝날 일이 한 시간으로 길어진다며 일탈은 작업자들을 유혹한다. 그래서 많은 현장들은 원청이 안전 지도를 나가고 작업자들이 숨어서 안전 수칙을 어기는 모순이 반복된다. 작업 방식에 대해 관리하는 일은 거들음에 지나지 않는다. 전선을 잇고 시멘트를 양생하며 흙을 파내는 작업자들이 현장의 주체다. 여러 신문과 통계에서 작업자의 주체적 역할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KOSHA에서도 산재 사고의 유형이나 업종에 대한 정보는 있지만 원청의 관리 소홀이나 작업자의 부주의 같은 책임의 주체에 대한 정보는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고가 일어나면 조사의 목적은 '안전 수칙이 지켜졌는지'가 아니라 '관리 감독이 소홀했는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근로자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를 때 안전이니 노사니 하는 것들을 입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