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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Dec 31. 2021

지나가는 해에 대한 예의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관습적으로 다사다난이라고 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무탈하게 지나온 나날들이 고맙기만 하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어떤 날은 바지를 두겹 껴입고 산책을 하거나 어떤 날은 귀마개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등의 아주 사소한 차이다. 매번 산책 코스를 이리저리 바꾸지만 그것은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작은 장치이다. 큰 변화없이 사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일년을 하루같이 쉬지 않고 매일 일터로 나간 가족들은 올해의 마지막인 오늘도 부지런히 일터로 떠났다. 특별히 "올 한해 수고햇어"라며 자기한테 말하는 건지 듣는 사람에게 하는 건지 불분명하게 말하면서.


나는, 나는 12월에 들어있는 정기검진을 일곱해째 무사히 마쳤다. 내년에는 암경험자로 여덟 번째 해를 살 예정이다. 정기검진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들어 의기소침하게 지내고,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면, 멋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약간 비뚤어지기도 한다. 


다소곳한 자세로, 어떤 분부든지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반 항복의 심정으로 담당의사 앞에서 검진 결과를 듣는 시간이 클라이맥스다. 이 시간은 되도록 짧을수록 좋다. 심장의 한계치 때문에. 

괜찮다는 사인을 받으면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년의 삶을 허락받는다.


이래저래 올 한해는 감사의 총량이 좀 앞섰다. 이것은 다분히 조작의 여지가 있다. 안 좋은 일을 만나면 다음에 오는 행운을 더 센 퍼센테이지로 치받으면서 앞의 불행을 상쇄해 버리려는 나의 수작 덕분이다.


어떻게 매번 맑은 날만 계속 될 수 있으랴.... 이것은 대처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면서 무사고를 감사했고, 꼭두새벽부터 불러대는 검진예약에 투덜거리다가도, 환자들보다 더 일찍 나와 준비를 마치고 환자들을 맞는 의료진들에게 화들짝 감사하기도 했다. 무료한 날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러 나와의 만남을 기획한 친구도 고맙고, 내 취향을 알아봐주는 바리스타도 고맙고, 무엇보다 부족한 책과 다이어리지만 잊지 않고 챙겨서 구매해 주는 독자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은 물론이고 약간의 부채감도 느낀다.(좋은 책으로 보답드려야 하는데....)


편집자라는 나름의 부캐를 만들어 살고 있는 요즘의 내 인생

위기에 빠질 때마다, 의기소침해지는 순간마다

구비구비 만난 작은 댓글 하나, 꼭 나에게만 향한 것도 아닌 글에서도 위로를 받았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맘 상하고 버림 받고 동굴 속에 들어가 있다가도 그 사람들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에 다시 나왔을 때 기꺼이 손 잡아 주신 분들, 글들...마음속에 저장하고 감사드린다. 


뜻밖의 곳에서 만난 여러 희망의 아이콘들, 매일 웹상에서 안부를 물어주는 이웃들. 이분들 덕분에 지나가는 한해는 가슴 벅찬 일들만 기억에 담고 가져갑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또한 올해 벌여놓고 마감을 짓지 못한 여러 일들, 미안함과 기대감으로 다음해에 토스(?)합니다


또한 다가오는 해는 무엇으로 채울까 벌써부터 고민하는 저도 귀엽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연휴 동안 열심히 기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오늘은 날은 춥지만 시내 이곳저곳 다니면서 떠나는 해를 온몸으로 배웅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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