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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오후 Nov 16. 2023

우리 동네 사장님은 매우 친절하다

골목상권 사장님과 주민들의 행복한 공존

수령 7백 년 향나무가 지켜보는 살기 좋은 동네 


양천로에서 마곡중앙5로 사이의 골목, 양천로30길. 

이곳은 마곡지구가 개발되기 전에는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심로였지만 지금은 마곡지구의 뒤안길이 되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마을버스가 회차하던 곳은 논으로 이어졌고, 밤새 개구리들의 합창은 덤이었다. 사계절 다른 풍경을 보여주던 옛스럽고 정겨운 동네였다. 


우리 동네 골목 상권

지금은 기존의 농경지가 대단지 마곡지구로 개발되어 상전벽해의 느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마을버스가 주민의 발 노릇을 하고 있고, 마곡나루역으로 향하는 중심길이자 지름길이 되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터라 주거 밀착 상권 지역으로 다소 부침을 겪었지만 주민들이 아끼고 좋아하는 가게들이 들어서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전처럼 중심 골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던가. 골목 중간에 우람하게 서있는 수령 7백 년이 넘는 향나무가 이곳이 얼마나 유서 깊은 마을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2005년 원래 향나무가 있던 저층 아파트 단지가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살짝 이동한 것 외에는 변함없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이 동네에 들어와 붙박이로 20여 년 사는 동안 향나무 주위는 많이 변했지만 오랫동안 이곳은 마을을 이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게으른 오후 책방



여느 골목 상권이 그렇듯 이곳도 미용실, 세탁소, 부동산 중개소, 인테리어 업체, 음식점, 편의점 등 생활밀착형 업종의 작은 가게들이 골목 양편에 나란히 있다. 거기에 더해 마트럴(마곡 센트럴파크,뉴욕 센트럴파크에 빗대)의 배후 상권으로 감각 있는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입소문을 타고서 멀리서 원정 방문하는 명소 가게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자영업자라면 대부분 그렇듯이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서 사장님들은 친절을 뼛속 깊숙이까지 장착하고 양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며 사업을 꾸려 나가고 있다.

늘 방문하는 가게의 이토록 친절한 사장님들이 태생적으로 친절한 성품을 지녔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매장을 찾아주는 고객들에게 상품 외에 편안함과 기분 좋은 경험을 함께 제공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친절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어느 가게에 불쑥 들어갔다가 사장님의 밝고 친절한 미소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경험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나는 소비하는 사람이니 나에게 맞춰주세요,라기보다는 내가 필요한 제품을 가까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예전에는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서면 화단이라고 부르기는 뭐한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같은 작은 꽃들이 계절마다 골목을 밝히고 있었지만, 지금 도시의 골목은 흙 한 덩이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꽉꽉 이어져 덮여 있다. 흙길은 비가 오면 질척거려서 신발과 옷을 망치기 일쑤여서 불편하기도 했다. 비가 와도 영향받지 않는 요즘의 시멘트 길은 신발을 버릴 염려가 없어서 좋긴 하지만 회색 콘크리트 투성이라 우리의 마음마저 메말라 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맞닿은 틈을 비집고 겨우 올라온 가녀린 초록 풀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생활밀착형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가 가까이 있는 것은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한쪽만 잘해서 관계가 이어질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 좋은 품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장님들과  그에 상응하는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고객들이 물품을 구입한다면 사장과 고객 모두가 상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이 동네 전체에 이로운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가는 이 골목에서, 매일같이 부딪치는 관계에서 주민과의 즐거운 상생을 위해 애쓰는 동네 작은 가게 사장님들의 영업 철학과 고객과의 관계 유지법, 각 상점의 특징을 담으려고 했다.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소비자로 살다가 어느 날 자영업자가 되고 보니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장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고객으로서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는데 그것은 사장님들이 상품 외에 덤으로 준 서비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친절에 대해 나도 친절과 감사의 표현으로 돌려주는 게 맞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 골목에서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주민과 사장님들이 나누는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거래를 나누고 내가 경험한 상생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남기고 싶었다.


이런 상생의 결과로 고객들은 더욱더 믿고 거래할 수 있고 살기 좋은 동네라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 동네에 작은 책방을 열면서 새롭게 발견한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이며, 아직 이 소확행을 미처 맛보지 못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행복이다. 

온통 회색 투성이 길에서 한 줄기 초록 식물을 발견할 때의 반가움처럼 우리 골목도 필요에 의해서 하는 상거래지만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며 감사함을 표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이 골목이 좋아 선택하고 영업장을 연 사장님들과 주민들과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이 동네의 품격이 높아지고, 아울러 우리 삶의 격조도 한층 올려주지 않을까.


이 작은 책자를 위해 바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신 사장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 한정된 지면과 일정으로 인해 미처 못 담은 가게들에게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다음 기회를 기약해 본다.

이 책자를 보기 좋게 만들도록 여러 사장님의 캐릭터를 그려준 성미앙 김성미 사장님과 각 매장의 스케치를 그려준 책방 고객 김미영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재능과 시간을 아낌없이 나눠 준 두 분 덕에 이 책이 더 빛나리라고 생각한다.


#강서구책방#마곡나루역#사장님은친절하다#게으른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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