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 부산 국제시장
나는 한 때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남극점까지 도보로 완주한 탐험가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이며, 장성하여 이미 독립한 두 아이의 아빠이며, 울산 바닷가에 있는 족발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다. 젊을 적 자신과 약속한 고산 등반을 거의 완수하고 이제 남은 시간은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준 언제나 고마운 아내와 함께 소소한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이 여행은 6년 전인 2019년 비 내리던 여름날 부산에서 느닷없이 시작되어 엊그제 다녀온 61번째의 안반데기 여행까지 이어진다. 우리 부부는 현재 70대를 앞두고 있으며 세월로 인해 어제보다 오늘 발걸음이 조금 더 무거움을 하루하루 여실히 느낀다. 그럼에도 천천히 조심히 걸으며 이 약속을 이어가고 있다. (아래 글은 개인 밴드에 써 두었던 글을 순서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 시작. 첫 번째 여행 --
지난주에 아내와 부산 국제시장을 다녀오기로 했으나 가게 사정으로 오늘 출발하게 되었다. 일기 예보는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날씨 가릴 것 없이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새벽에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장사 준비를 해놓고, 10시경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달렸다. 도로를 달리면서 지나는 산에는 안개가 머리를 풀어 하늘로 승천하는 경관이 아름다워 아내는 사진을 찍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의 특별한 아름다움이었다.
부산 시가지에 들어서자 고층 건물들의 웅장함에 부산이 울산보다 훨씬 큰 도시라는 것을 실감했다. 자갈치 시장에 주차를 하고 각자 우산을 쓰고 국제시장으로 걸었는데, 비 내리는 거리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었다. 몇 가지 쇼핑을 했는데, 허리벨트 가게에 들어가니 수많은 벨트가 진열되어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선글라스도 마음에 드는 것이 6만 원 대여서 차 기름값 정도는 이득본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원조할머니집에서 유부주머니와 잡채를 주문해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예전에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 먹었을 때는 현장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없었는데, 아마도 국물 맛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전에는 어디서 먹든 그게 그거라 생각했지만 여유를 가지니 다름이 보인다.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을 쇼핑하다 거리가 복잡해져서, 우리는 다정히 손을 잡고 우산 하나를 같이 쓰며 용두산 공원으로 향했다. 관광안내소에서 출입구를 물으니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고 있다고 안내해 주어 아내가 매우 좋아했다. 혼자였다면 당연히 걸어갔을 테지만 편하게 올라간다고 즐거워하는 아내의 곁에 함께했다.
용두산공원은 우리가 연애할 때 다녀간 후 약 40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다. 솔직히 옛날에 아내와 함께 올랐던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그냥 다녀갔었다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연애할 때는 용두산보다 함께 있는 아내가 더 좋아서 용두산 공원이 기억에 자리 잡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나이에 함께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어가니 삶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커피와 팝콘을 들고 전망대에 올라 부산 시가지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신동은 학교 졸업 후 처음 직장으로 객지 생활을 했던 곳이었다. 아스라이 안개비 속에 추억이 피어났다. 세월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리벽을 타고 미끄러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통로가 빛과 조명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우리와 다른 탐방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공원을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갔다. 자갈치 시장에서 양곱창을 먹었는데, 나와 아내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유명세만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것이 늘 그러하다. 이름과 기대가 높으면 어지간해도 중간이 되어버린다. 갈치도 사고 어묵도 구입했다. 아내와 전망대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가볼 곳 100개를 선정하여 다녀보기로 약속했으며, 장소는 아내가 선정하기로 했다. 자연스레 오늘이 그 첫 번째였다.
2019.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