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도쿄. 우정과 스타일 차이
2018년 6월 - 처음 떠났던 여행 (3)
5. 우여곡절 끝에 일본 친구와 상봉. 주린 배부터 채우러 신주쿠에서 유명하다는 몬자야끼 가게 에 갔다. 지글거리는 철판에 반죽을 붓고 작은 숟가락으로 익은 부분부터 조금씩 떠먹었다. 맛있는 음식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5-1. 무사히 와서 다행이야, 일본 친구가 반겨 주는데 나는 괜히 미안했다. 연락을 못해서 약속 장소에 한참 기다리게 했는데... 몬자야끼라도 내가 사든가, 아니면 오늘 다니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작은 감사 선물이라도 해야지 싶었다, 얼굴 하얀 친구가 항공사 서비스 최악이라고 다신 안 탈거라며 계속 투덜거렸다. 기분 상해도 다 지나간 일. 웃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던 나와 일본인 친구는, 서비스에 대해 연신 화만 토로하는 친구 앞에서 우리가 눈치를 봤다. 마치 우리가 죄라도 지은 냥.
6. 짧은 일정이었기에 꽤 빽빽하게 코스를 짰었다. 하지만 오늘 중으로 이곳들을 다 갈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캐리어도 있어서, 일단 여행 기간 동안 재워 주기로 했던 일본 친구의 집에 들러 짐부터 내려놓고 와야 했으니까. 그러자면 또 시간이 걸리고... 사전 조사한 내용 빼곡히 적은 여행 일지를 펼쳤다. 도쿄에 오면 가고 싶던 곳, 혹은 하고 싶은 것, 여러 옵션 중 몇 가지를 지웠다. 아사쿠사에서 운세를 가늠하는 오미쿠지 뽑기랑, 아키하바라 가서 피규어 구경 하는 걸 뺐다. 그리고 국내 수입 안 된 애정하는 만화 최신 단행본 사기. 만화책은 꼭 아키하바라 아니어도 살 수 있겠지? 가다가 보이는 서점에서도 그걸 팔까...?
단행본 생각에 눈가 촉촉해져 아쉬워하는 날 보며, 만약 못 사면 대신 구매해 보내주겠다며 일본 친구가 방글방글 웃었다. 반면, 내 여행 파트너는 꽤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6-1. 우리 시간도 별로 없는데, 서점에 꼭 들러야 돼?
의아해하는 친구의 말에 순간 욱 서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지금 누구 때문에 시간이 없어졌는데... 내가 그 캐리어 갖고 오지 말자 했어 안 했어! 화내고 싶었지만, 여행 초장부터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아 또 속으로 바를 정(正)자 정정정정(正正正正) 세기며 눌러 담았다.
응.
겉으로 짧게 대답하고, 속으론 더 길게 대답했다.
응, 네가 꾸역꾸역 캐리어에 넣어서 가져온 그 말도 안 되는 인형 같은 거야. 솔직히 한동안 기분이 엄청 꿍해 있었다.
7. 흥분한 감정을 체에 살살 걸러내고 나면, 가끔 거기에 배움이 남을 때가 있다.
그날 밤, 일본 친구의 방에서 인형을 품에 꼭 껴안고 웅크리고 자는 녀석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래. 어쩌면 내게 그 만화책이 중요했던 것처럼, 네게도 그 인형이 엄청 중요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친구의 그 못생긴 인형이 더 이상 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