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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Jul 30. 2023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 교보문고 인터뷰

<하룻밤 미술관>에 이어 두번째 등장 

긴 글을 기피하는 시대에 200자 원고지 40~70매짜리 기사, 그것도 '미술 기사'를 세상에 내놓은 정치, 사회부 출신 기자가 있다. 〈헤럴드경제〉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쓴 이원율이 그 주인공이다. "소장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이 쇄도함에 따라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을 출간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인지 그는 이 책을 미술을, 독자를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러브레터'라고 부른다. 우리의 인생에 왜 미술이 필요할까?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 저자 이원율과 이야기를 나눴다.



1. 무려 네이버 누적 조회 수 700만이 넘은 칼럼이죠, '후암동 미술관'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제 기자 경험은 사회부와 정치부로 쏠려 있어요. 사회부에서 3년 반, 정치부에서 또 3년 반을 있었지요. 지난 20대 대선까지 4번의 선거를 취재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장 힘들다는 선거 현장에서 긴 세월을 보낸 셈입니다. 간혹 저를 문화부 기자로 아는 분도 계시는데, 그쪽으로 발령받은 적은 아직 없답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기사를 쓰다 보면 보람도 컸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어요. 공들여 쓴 기사 대부분의 수명이 고작 하루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밤새 정치인들에게 수십 통씩 전화를 돌려 쓴 기사도 그 생명력이 10분도 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특성상 어쩔 수 없었지만, 약간의 허무함은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루짜리 기사가 아닌 1년짜리 기사, 10년짜리 기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시의성도 없고, 분량 제한도 없고, 기사체도 아닌, 즉 '기사 같지 않은 기사'를 써보고 싶다고 손을 들었어요. 저는 10년 전 대학생 때부터 미술 블로그를 운영해왔습니다. 전공자도 아니고, 집안에 예술 쪽 종사자가 있지도 않아요. 그저 제가 좋아서 관심을 가졌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짝사랑이 맞았네요. 그렇게 소재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미술로 잡고, 사회부와 정치부의 경험을 살려 집요하게 취재하되, 내용만큼은 긴 호흡을 갖고 쓰면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2022년 4월부터 시작해 지금껏 매주 토요일, 벌써 60편을 넘게 써오고 있네요. 출간한 후 기사 3편을 더 썼어요. 그사이 누적 조회수는 150만이 더 올라서 이제는 850만이 됐답니다.


2.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이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을 묶었다고 들었는데, 다른 미술책과 무엇이 다른가요?


저도 미술을 좋아하다 보니 꽤 다양한 책을 읽었어요. 너무 좋은 책이 많았지만, 조금의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가령 미술사와 사조 등 이론을 다룬 책들은 깊이가 있는 대신, 보기보다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소화하기 힘든 용어, 문장이 적지 않았어요. 화가와 그림의 뒷이야기를 쓴 책은 재미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비슷한 내용이 많았어요. 유명 화가와 인기 있는 작품을 다루고 또 다루는 식이었지요.

'후암동 미술관' 기본 편에 속하는 이 책은 깊이와 재미를 모두 갖춘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먼저 지적 유희로는 당장 목차만 봐도 미술사의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각 시대 선구적 예술가와 작품을 통해 그 시절 미술사조를 이해할 수 있게끔 짰어요. 조토 디 본도네와 그의 그림 '애도'를 통해 르네상스가 왜 르네상스인지를 짚었어요. 카라바조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통해 바로크가 왜 바로크인지, 르네상스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등을 설명했어요. 이렇게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공부가 되게끔 구성했어요. 사적인 재미는 독자분들께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모든 편의 서문을 팩션으로 풀었어요. 몰입도를 높이고,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함이었지요. 소설 읽듯 글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끝 문장까지 볼 수 있게끔 했어요. 내용은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어요. 저 또한 미술 비전공자기에, 어느 부분이 어렵고 어느 지점이 헷갈리는지를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외려 더 쉽게, 한 번 더 풀어서 문장을 만들고자 했어요.


3. 미술사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혹시 미술사를 알면 어디에 도움이 될까요?


미술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했던 벽을 기어코 깨부수는 사건의 기록들로 봐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얀 반 에이크는 사실상 유화 물감을 들고 그림을 그린 첫 화가입니다. 그간 헌법처럼 계승된 템페라화, 프레스코화를 버렸어요. 그 결과로 예술의 발전을 이끌 수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에두아르 마네는 수백 년간 이어진 원근법, 폴 세잔은 수천 년간 계속된 대상의 재현(再現)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했어요. 이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나아가 입체파와 야수파에도 영향을 주지요. 그렇게 미술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었어요. 

미술사는 궁극적으로 건강한 삶의 태도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봐요. 도전하는 용기, 즉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 용기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공격적 삶이 안주하는 삶보다 더 많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점도 떠올릴 수 있게끔 이끈다고 생각해요.


4. 에필로그에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술을 알고 기자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대학생 때 우연히 독일어 기초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네 개의 격, 세 개로 구분되는 명사의 성 등을 공책에 쓰고 외웠지요. 그런데 잠깐 배웠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제가 보고 읽을 수 있는 게 한 뼘 더 많아졌어요. 과거에는 아예 알아볼 수 없던 미지의 단어들을 그나마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지요.

미술 또한 그런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미술에는 모든 신화와 역사, 세상의 풍경과 삶의 장면, 그 화가의 정신까지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는 미술이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미술을 곁에 둔 후부터 제 삶은 더 다채로워졌어요. 기쁨과 슬픔, 감동을 겪고 공감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그냥 스쳐 갔을 법한 장면을 놓고도 여러 사유와 많은 정신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삶이 더 여유롭고, 풍요로워졌지요.


5. 이 책에 나오는 화가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나 작품이 무엇인가요? 혹은 이 책에서 아쉽게 다루지는 못했으나 추천하는 화가와 작품도 궁금합니다.


책 속 등장하는 화가 중 가장 좋아하는 이는 폴 세잔입니다. 그는 천재라기보단 둔재(鈍才)에 가까웠어요. 은행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편안한 삶을 뒤로 한 채 화가의 길을 고집했지요. 세잔의 그림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으며 믿었던 친구에게 모욕까지 당했으나, 그는 묵묵히 걸어갑니다. 쉰 살이 돼가는 동안 이룬 게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 결과 세잔은 끝내 자기만의 예술혼을 증명했어요. 그가 지겹도록 그린 사과는 인류사상 위대한 사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어요. 이제는 근대회화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지요. 앙리 마티스도, 파블로 피카소도 세잔을 놓고 "나의 아버지"라고 말할 만큼 위대해졌어요. 끝까지 견디고 버텨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세잔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는 이유입니다. 작품으로는 앙리 루소의 '꿈'을 좋아해요. 한 번 가본 적도 없으면서 가본 척 정글을 그린 당당함, 나체 여성과 사자 한 쌍에서 볼 수 있는 유머와 재치,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는 지금도 신선해요. 그때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우리나라 화가를 한두 분 정도 더 심도 있게 다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많은 분께서 책 속 윤두서 이야기를 좋아해요. 도화서의 선후배 사이였던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의 반 고흐' 최북,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등 소개할 분이 많아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열심히 쓰겠습니다.


6.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실 '후암동 미술관' 첫 편이 올라가기 전날 밤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무서웠어요. 선례가 없던 기사기에 독자분들의 반응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소설은 일기장에 써라', '재수 없게 아는 척을 한다'라는 식의 반응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요. 두려움을 밀어내고 댓글을 봤어요. 몸 둘 바 모르겠는 호평들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그런 독자님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이라는 멋진 책도 낼 수 있었고요. 한 번의 파일럿에 그칠 뻔한 '후암동 미술관'도 벌써 1년 반을 내다보고 있어요. 기자 페이지 구독자 2만 명, 하나의 칼럼 시리즈에 누적 조회수 850만 회 등 이쪽 업계에선 결코 쉽지 않은 숫자를 얻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어요. 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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