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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Jun 01. 2024

세번째 책을 썼습니다

가장 문학적인 미술책, <결정적 그림> 탄생!


늘 1인자 모차르트보다 2인자 살리에리에게 정이 갔어요.


둘을 그렇게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 좀 울었어요. 모차르트에게 질투의 화신처럼 구는 살리에리를 보고- "내게 왜 갈망은 심어주고 재능은 안겨주지 않았느냐"는 기도 장면, "난 보통 사람의 대변자"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선 솔직히 좀 많이 울었습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저는 달동네에서 자랐습니다. 환경은 보통의 영화 묘사보다 약간 더 극적이었고,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큰 덕에 저는 욕심도 많고, 승부욕도 강한 편이었습니다.


2% 부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뚫고 1등에 오를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물려받은 교복과 체육복, 물려받은 문제집과 학용품, 물려받은, 또 물려받은. 다 변명이고 핑계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철없고, 어릴 때였어요. 그러고 보면, 기어코 1등으로 뛰던 장애물 육상 대회에서 그놈의 펄럭대는 체육복이 허들에 걸렸을 때. 머리를 흙에 처박고 또 2등을 한 그날에도 살짝 울었습니다.


취준생 시절에는 시험을 치기 위해 계속 서울에 갔어요.


매주 토요일 새벽, 서울역에 가는 4시간 무궁화호 입석 표를 끊었습니다. 그게 제일 싸고, 변수가 없는 수단이었어요. 시험을 치면 또 4시간... 몇 달을 반복했지요. 토일 시험을 칠 때는 주로 피시방과 찜질방을 찾았어요. 웅크려 과제를 하고, 면접을 준비하고, 쓰러져 자고... 저에겐 이런 환경을 넘어설 재능도 없었습니다. 면접관 사이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험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내게 왜 갈망만 심어주셨느냐…." 살리에리의 대사가 맴돌았습니다.

너절한 이야기지요.


그래도 이런 과정을 겪으며 뼈저리게 깨달은 게 있어요. 꾸준함의 힘이요.


제가 누구보다 자신 있던 게 딱 하나 있었어요. '오래 달리기'입니다.


그건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목에서 피맛이 날 때까지 달렸습니다. 한창 달릴 땐 어디서든 썩 괜찮은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만화의 대사처럼,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차라리 노력의 천재가 돼버리자.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감사히도 저를 아껴주는 회사에 취업했고, 더더욱 감사히도 유능하고 따뜻한 선후배, 동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저는 10년 가까이 이곳에 있으며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2년 넘게 <후암동 미술관> 미술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행운을 맞아 이를 뼈대로 <결정적 그림> 책도 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책 소개글이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위로요. 저는 비루했던 많은 순간, 여러 화가와 그림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무하의 결정적 그림을 보며 성실함을 붙들었고, 추사의 결정적 그림을 보며 쓸쓸함을 집어삼켰고, 젠틸레스키의 결정적 그림을 보며 복수를 꿈꾸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꾸준함을 이어갈 동력을 얻었습니다. 기차 푯값을 벌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 있을 때, "공부 안 하면 저리된다"는 말을 들을 때도 고개 들 기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분명.


책 속 모든 글을 단편 소설처럼 썼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갖는 핵심 특징은, 소설과 영화를 접하는 듯한 압도적 몰입감입니다.


때로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듯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많은 분에게 한층 더 깊은 기쁨과 슬픔, 한 뼘 더 큰 폭의 감동과 깨달음을 안겨드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경험을 연료 삼아 지금의 세상 또한 보다 아름답게, 조금 더 눈물겹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사이 저 또한 오래달리기를 이어갈 때처럼 계속 칼럼을 나아가겠습니다.

트레제게를 아실지요. 절친 앙리에게 밀려 많은 순간 백업으로 있던, 2인자 라인에 있던 축구선수입니다.


트레제게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골을 넣지 못했어요. 혼자 골을 넣지 못해서, 준우승의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습니다.


풀 죽은 트레제게가 조국에 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조롱 아닌 환호였어요. 팬들은 알고 있었어요. 그가 얼마나 축구에 진심이었는지요. 트레제게는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젠가 제가 칼럼을 그만두는 그날- 그사이 어떤 일이 벌어지든, 트레제게처럼 격려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은 모든 분께, 오늘도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결정적 그림> 구경 링크도 살짝 붙여놓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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