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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Oct 14. 2018

조그만 일에도 두근두근, 내 마음속의 알람

조절되지 않는 불안과 교감신경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아무리 좋아하는 곡이라도 알람으로 쓰진 않는다아까워서다질릴까 듣기조차 아까웠던 곡이 세상 가장 듣기 싫은 곡으로 바뀌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삶을 이어가기 위해 삶을 쪼개 팔아야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비애다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유는 비싸다이를 굳이 빽빽 거리며 알려주는 소리는 당연히 괴롭다
  
  알람은 수면 상태의 뇌를 깨우는 기능을 한다청각적 자극을 통해의식 수준을 관장하는 뇌 내 망상활성계 (reticular activating system)를 활성화하여 의식의 각성을 유도한다잠든 대뇌에 활동할 시간입니다오늘도 열심히 버셔야지요하는 신호를 퍼트리는 것이다.
  
  우리 몸에도 알람이 있다자명종이 잠든 나를 깨우는 역할을 했다면몸의 알람은 위협에 대처하는 역할을 한다바로 교감신경이다교감신경은 위기 상황에서 발동하여 개체가 적절한 대처를 하도록 유도한다말하자면위협에 대한 생체 알람이다.
  
  교감 신경의 기능에 대한 꽤나 멋진 표현이 있다투쟁 도피 반응영어로 Fight or flight (라임이 맞아서 더 멋지다...) response' 이다.
  
  출근을 하려는데차문 앞에 왠 호랑이 한 마리가 서 있다고 하자피 뭍은 발톱과 팔뚝만한 어금니가 망막에 맺혀 뇌로 인식된다비릿한 짐승의 향이 코끝을 스친다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낀다의식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교감신경이 작동한다무슨 일이 일어날까상대를 더 잘 보기 위해 눈이 번쩍 뜨이고 동공이 확장된다한가하게 소화나 시킬 때가 아니니 위장의 혈액이 온몸의 근육으로 몰린다잔뜩 수축한 근육들이 불룩 거리고표정이 헐크처럼 일그러진다미친 듯 펌프질하는 심장의 박동이 머리끝까지 느껴진다.
  
  이제 몸은 준비되었다터질 듯 달아오른 허벅지로 달려 도망을 치거나 (flight), 죽어도 지각은 할 수 없는 현실에 이를 악물고 호랑이를 때려눕힌 다음 (fight출근을 하면 된다.
  
  자연 상태의 인류는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다이를 포착한 개체는 도피할지맞서 싸울지 빠르게 선택해야 했다찰나의 머뭇거림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그래서 생체 알람교감신경은 의식 수준을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자동적으로 조절되도록 진화했다흘러넘치는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심장이 쿵쾅거리고 수축한 모근으로 인해 등의 털이 곤두서지만이를 느낄 틈도 없다교감신경이 죽음의 경보를 울리고 있다인간은 겁에 질린 채 도망쳐야 했다살아남으려면.
  
  그런데살면서 야생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는가?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차량을 맞닥뜨린다든지폭행 시비에 휘말린다든지 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위협을 마주하는 일은 드물다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지금이 아닌동굴을 찾아온 범과 맞서던 태고에 머물러 있다. 200만년 인류의 역사는개인의 삶과 비교하면 참으로 긴 시간이지만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찰나다많은 위협을 제거해 온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에 화의 속도는 턱없이 느리다.
  
  일상에서온 몸의 힘을 끌어올려 싸워 이기거나 도망쳐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오히려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가다듬어 신중을 기해야 할 임무는 늘었다침착냉정은 흥분격정 보다도 현대에 더욱 적합한 덕목이다인간의 삶이 그만큼 복잡해졌기 때문원시생활에 맞추어 놓은 자동 위험 알람인 교감신경그래서 때로 성가시고 불편하게 작동한다.
  
   ‘꼬박 일 년을 준비한 시험을 치르는데점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다리가 자꾸 후들거리고귀에서 다른 소리가 들린다정신이 아득해진다글이 글로 읽히지 않고 그림으로 보인다쓰러질 것만 같다.’
  
  ‘짝사랑 하는 그와 모퉁이에서 갑자기 부딫힐 뻔 했다웃으며 자연스레 인사하자 라고 생각했지만이미 얼굴이 붉어져 터질 것 같다호흡이 점점 가빠진다말을 하려는데 목이 자꾸 잠긴다가슴이 쿵쿵거려 튀어나올 것 같다말 한마디 못하고 허둥지둥 자리를 피한다.’
  
  몰래 좋아하던 이가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서심장이 멎는 것은 아니다 (그런 느낌은 들 수 있다.). 시험을 망친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무게에 지치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생각들과 연계되어 작동하는 교감신경의 작용은 퍽 곤란할 수 있다짝사랑하는 이를 때리거나 (fight), 시험 자리에서 도망칠 수는 (flight) 없는 노릇이다.
  
  시험을 치고사람을 대하고맡은 바를 수행하는 일상의 여러 일들은어찌 보면 일종의 위협일 수는 있다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부정적인 결과가 상상이 되고이는 개체에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이 두려움이 핵심이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두려움을 인식한 우리 몸의 생리는 자동적으로 생존 위협 알람을 켠다.
  
  생각과 감정그리고 신체의 생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아이러니하게도긴장을 하면 안 된다는 그 생각 자체로, ‘무언가가 잘 못 되거나잘 못 될 가능성이 있다’ 고 인식된다이러한 신호는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불필요한 긴장불안으로 인한 감정적 소모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생각과 감정신체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면 어떨까아무런 일도 없는 주말라면 두 개를 끓여서 다 먹고 아무 생각 없이 티비를 틀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좋아하는 프로를 보며 웃다 보니 노곤하다약간 양쪽의 머리가 저리면서 살살 잠이 오는 것 같다신체가 현재를 편안하고 안전한 순간으로 인식하여전신의 근육과 뇌의 혈류를 위장관으로 돌리며 생기는 현상이다소화가 촉진되고고단했던 신체와 뇌가 안식을 취한다아수라 백작의 두 얼굴처럼한 몸에서 교감신경과 반대 (길항)로 작용하는 부교감신경 작동이다.
  
  이 부교감신경의 작동을 활용하는 것이다현실은 물론 고단하고 가혹할 수 있다그럴수록 평안할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숨이 가쁠수록 천천히 호흡하고신체의 긴장을 풀고 이완하다 보면흥분하던 생리 반응 이윽고 진정될 수 있다다가올 결과를 생각하기보다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며 몸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면 떠오르는스스로를 불안하게 했던 마음의 생각들을 되짚어 보고스스로를 믿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의 불안이 해소되고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진 않다하지만 현실보다도그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이에 이어지는 몸과 마음의 반응으로 어려워하는 이들을 마주하면서, 이 글을 쓰고 싶었다스쳐가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두 번’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실제의 나는마음이 가두는 나보다도 더욱 강하다.
  
  두려움에 반응하는 몸의 작동스쳐가는 생각들을 이해하고스스로의 두려움을 다독여 주다 보면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고 한 걸음 내딛을 길이 보이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지나치게 긴장되고 두려운 일일수록미리 결과를 생각하지 말자크게 한 숨 내쉬고, ‘어차피 이 일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 한 번 되뇌고지금 내게 최선인 한 발을 내딛어 보자원하지 않는 결과가 그대로 다가오진 않더라도닿은 발끝에서 삶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
일상생활에서교감신경을 진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복식호흡이다지금 있는 곳이 회사이든집이든지하철이든어디든 상관없다눈을 감고몸에 뼈가 사라진 듯 힘을 빼고 앉아지긋이 숨을 쉬어 보자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며공기가 코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지나 배를 불리는 것을 느낀다다시 최대한 천천히 내 쉬어 보자그리고 머리 속에지금까지 다녀간 장소 중 가장 상쾌하고편안했던 곳의 느낌을 떠올리자그때 불어왔던 바람바닷내음지저귀는 새소리 ... 어느 새 몸과 마음은그곳에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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