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서...

by Cafe tulipe

엄마와 동생과, 엄마들끼리 친해져서 자주 만나던 국민학교 (나는 국민학교 세대인지라...) 동창들 가족들과 함께했던 제주도 여행이 벌써 30년 전이 돼버렸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한번 꼭 같이 가자고 해서 제주도를 갔었던 거였는데,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한국 여행이 될 줄은 몰랐네. 엄마, 왜 그 이후로 나는 한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엄마랑 같이 한국 여행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제주도도 다시 가보고, 엄마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꼭 한번 가고 싶어 하던 땅끝도 가보고. 왜 그러지 못했을까.


[폭삭 속았수다] 드라마가 미국 넷플렉스에서도 방영되면서 여기저기 드라마 보고 펑펑 울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도저히 시도를 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신파적인 엄마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러나..." 해서 나도 눈 퉁퉁 부어서 회사 온라인 미팅 하게 될까 봐.


그런데 요즘 생리가 불규칙해지면서 호르몬에도 불균형이 오는지 우울한 맘이 자꾸 들더니, 갑자기 이 드라마도 보고 싶어 지더라. 기대한 그대로였어. 엄마 얘기 투성이. 엄마와 딸 이야기, 아빠와 딸 이야기. 딸로서의 엄마. 엄마로서의 딸. 그런 모두가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


마음이 아플 때 정말 마음이 턱턱거리게 통증이 느껴진다는 느낌도 정말 나만 느꼈던 게 아니었네. 엄마 잃은 슬픔도,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보고 싶고 나에게 너무 필요한 엄마도,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편하게 쉬는 거보다 아직도 철없는 내가 슬퍼서 더 슬픈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우리 엄마도 문학소녀였는데. 엄마와 엄마 바로 손위 이모가 같이 앙케트집을 만들어서 자작과 타작 시들이며 글귀를 적어놓고, 이쁜 소녀들 얼굴 그려놓은 엄마 여학생 때 그 노트를 내가 보았지. 엄마가 소녀였다는 게 너무너무 신기했었지. 흑백 사진 속에 단발머리. 하얀 카라가 이뻤던 명문여고 교복을 입고 좋아했다던 선생님과 함께 찍고 간직한 그 사진. 엄마는 그 사진의 그 소녀로 기억되기 원할까?


엄마에게는 내가 1순위였는데. 나도 엄마가 되고 나의 1순위들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나를 1순위로 생각해 주던 사람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허해질까 봐 눈 질끈 감고 잊고 지내려고 한 날도 많았네. 그런데 가끔씩 그 잊으려는 노력이 쌓이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터지는 순간들이 생기더라고.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왠지 더 그런 듯싶네. 정말 모든 것을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왜 이렇게 감정적이고 우울한지 말이야. 응? 엄마.


엄마는 이 나이의 이런 중년의 시기도 해외에서 다른 사람들의 큰 도움이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학까지 다 보냈네? 정말 어떻게 그랬어?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 안 해봤다는 핑계를 되며 나 자신에게 "모를 수도 있지"라며 안심을 하는데, 엄마는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 순간들, 위기들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웃었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너희 엄마는 항상 스마일을 하던 사람이야"라는 말을 내가 장례식에서 수도 없이 듣게 했어?


엄마,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도 내가 엄마를 사랑한 것만큼 나를 사랑하고, 엄마의 사랑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갈까? 나는 엄마가 나를 1순위로 두고, 나를 믿어주고, 항상, 정말 항상 웃어준 것처럼 아이들에게 웃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앞으로 가져올 갖은 실수와 눈물 속에서, 그리고 내가 마주할 삶이 주는 낙심들 사이에서 나는 정말 웃는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엄마의 웃음은 슬픈 웃음도 아녔네. 슬프지만 나를 보면 행복해주는 엄마의 미소였네. 그게 엄마가 슬픔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엄마 아직도 나는 엄마가 담긴 영상을 잘 볼 수 없어. 우리 첫째랑 놀아주는 영상에서 엄마는 1살도 안된 우리 아이랑 놀아주면서 "너희 엄마 힘들게 하면 안 돼!"라고 또 웃으면서 말했어. 그게 난 그때 좀 민망했는데, 이제는 그냥 마음이 아파. 딸이 없는 나는 그런 마음 나중에 아들의 자녀들을 보면서 들게 될까? 엄마 왠지 딸이 더 애틋했어? 정말 딸 배 아파서 낳은 아이들이 더 정이 가? 그런 엄마는, 집안 유일한 아들이라고 외삼촌이랑만 살려하셨던 외할머니 보면서 무슨 생각했어? 마음이 아팠어? 엄마는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셔서 많이 많이 힘들었어? 나처럼 힘들었어? 엄마가 외할머니 보고 싶어서 울 때 아빠가 같이 있어줬어? 내가 위로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


난 아직도 책방에 들어가거나 도서관을 가거나 책을 선물 받거나 하면 엄마가 생각나. 아 엄마 내가 요즘 한국에 자주 들어가게 되는데, 교보문고 가면, 정말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 요즘 교보문고에는 책방에선 나는 향기라는 인센스, 향초, 퍼퓸 등을 파는데, 나는 못 살 것 같아. 매일 매 순간 엄마 생각나면 나는 아직은 너무너무 힘들어. 그래도 엄마가 나를 책을 사랑하게 해 주어서 난 그게 정말 너무 감사해. 소설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고, 역사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했던 엄마여서 너무 좋았어. 너무너무 좋았어. 엄마 같은 사람이 나의 엄마였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


엄마에게 이렇게 긴 일기를 써보는 건 정말 첨이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섣불리 엄두를 못 냈어. 이렇게 울다간 탈수 증세가 생길 것 같아. 엄마 나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니 지금까지 보다 더 멋지게 더 열심히 잘 살도록 거기서도 기도해 줘. 난 엄마처럼 너무 빨리 가지 않고, 우리 아이들 손주까지도 보고 가고 싶다는 욕심을 내봐도 될까. 평생 이렇게 엄마 생각하면서 눈이 퉁퉁 붓진 않겠지? 그렇지, 엄마? 한몇 년만 더 이러고. 그 이후에는 엄마랑 찍은 영상도 울지 않고 웃으면서 보고. 그래야 우리 애들한테도 외할머니 영상 보여주지. 지금까지는 사진 빼고는 내가 못 보여줬어. 나 힘내게 엄마도 힘내줘.


건강하라고 말해도 될까. 엄마 보고 싶어. 사랑해. 꿈에도 자주 나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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