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by 유홍준

by 무무

글씨를 나름 깔끔하게 쓴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분들이 제가 쓴 걸 되물어보시는 거 보면 아무래도 악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글씨를 잘 쓰시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부럽기까지 합니다. 저의 글씨체는 어머니에게 아직도 혼나면서도 그저 추사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였지만 위대한 달필가를 욕하게 한다고 또 욕을 먹습니다. 사실 추사체를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책으로 나온 사진들로만 몇 번 스쳐 지나갔기에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그의 글씨인 추사체에 눈길이 많이 가서 그렇지 고증학과 실학에서도 최고 경지를 보인 인물입니다. 추사체를 만들어 낸 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천재였겠지만 결코 재능만으로 이루어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글씨를 원리를 터득하고 자신만의 글씨를 만들어 내기 위해 평생 10개의 벼루 돌에 구멍을 냈고 붓 1,000자루를 망가뜨릴 정도의 연마 노력을 통하여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추사체를 만들어 낸 것은 제주도 남단인 대정의 혹독한 환경으로 귀양가 8년 3개월 동안 죄인의 신분으로 좁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함도 있었고 끝없이 조여 오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붓글씨만을 쓴 끝에 추사체라는 글씨체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독설가로도 유명했습니다. 감상과 서평을 부탁을 많이 받았던 그는 누구를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평가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최고 권력가였던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난초 그림을 서평해 달라는 말에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추사 이전 서예의 이론과 역사를 쓴 이광사의 <서결>이라는 책도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서예 공부를 이 책으로 할 정도로 우리로 따지면 정석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추사는 조선의 필법을 두고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대놓고 깔아뭉갭니다. 붓을 뉘어서 쓰는 필법의 병폐를 지적하였고(그것을 언필이라고 합니다.) 서예가가 붓 탓을 하면 되겠느냐고 붓 잡는 법과 먹 쓰는 법도 모른다고 오늘날로 따지면 디스를 했습니다.


P : 내 글씨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칠십 평생에 나는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네.


저는 유홍준 교수님을 좋아합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전 세계에 내놓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고 어떻게 보면 책이라는 흥미를 제게 알려준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기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완당 평전>이 있는데 지금은 이 책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오류들이 너무 많아 이 책은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고 절판이 아닌 폐기처분이 되고 맙니다. 이유인 즉 추사연구회에서 이 책의 오류들을 대량 발견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류가 많아서 절치부심하고 교수님은 십몇년만에 이 책을 다시 출간하였습니다. 이름만 알고 잘 모르던 걸출한 서예가 추사에 대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나게 쓰여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마저 아직도 논란은 많습니다. 표지에 나와있는 산숭해심(山崇海深)부터가 위작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추사 작품으로 아직 공인된 적 없는 작품입니다. 간송미술관에 있는 추사 글씨 8점이 모두 이 책에는 실려있지만 2018년 미술관 소장의 문화재청에 보물 지정을 신청하였지만 3점만 지정되고 5점은 탈락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논란의 이유로 찾아보면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추사 그림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세한도(歲寒圖)>와 <불이선란도(不二禪欄圖)> 두 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거의 다 위작이라고 합니다. 추사가 그린 그림일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