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르한 파묵
남편이 죽마고우와 바람난다든지, 애인이 알고 보니 잃어버린 동생이었다든지,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을 다룬 이야기들을 두고 우리는 막장이라고 합니다. 이 막장이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는 대중들 덕분에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꽤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이야기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다룬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가 한 예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중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전쟁터에서 아들 쉬흐랍을 모르고 죽인 뤼스템의 이야기가 하나의 예입니다. 파묵이 쓴 이 책에는 페르시아 고전 <왕서>에 나오는 그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와 함께 소설 전반에 복선으로 녹아있습니다. 항상 오이디푸스 같은 막장 이야기가 어떻게 현대에 와서도 재해석이 되는지, 하루키에게는 <해변의 카프카>를 탄생시켰고 오르한 파묵에게서는 이 책을 탄생시켰는지 궁금했습니다.
주인공은 친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 같은 존재인 스승 사이에서 두 개의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고뇌합니다. 이스탄불에 사는 고등학생 젬은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지자 대학 학비를 준비하기 위해 우물 파는 일을 하러 30마일 떨어진 도시 왼괴렌으로 떠납니다. 우물 파는 기술자인 마흐무트는 비밀스러웠던 아버지와 달리 밤마다 신화를 들려주고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빨강머리의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마흐무트에게 은근한 질투를 느끼던 젬은 마흐무트가 들어가 있던 우물에 실수로 양동이를 떨어뜨린 뒤 그를 죽였다고 믿습니다. 고향으로 황급히 도망친 그는 먼 훗날 왼괴렌을 다시 찾아간 뒤에야 재회한 친아버지와 빨강머리 여인, 마흐무트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파묵은 이 책에서 터키 및 중동, 아시아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 주인공의 삶에 절묘하게 녹여냅니다. 이전에 읽었던 신화와 더불어 주인공의 과거, 현재 이야기가 얽혀 있는 설정이 조금은 복잡해 보였지만 어느덧 실타래의 끝을 잡게 되어서 풀리게 됩니다. 파묵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자유와 복종, 진정한 자아, 운명에 대해 두루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아버지를 몰라보고 죽인 오이디푸스와 왕서의 신화 앞에서 젬이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 묘사와 빠른 전개 덕에 지루하지 않고 한 번에 읽게 됩니다.
P : 우리는 강하고 결단력 있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해 주기를 바란다. 왜 그럴까?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와 관련해 무엇이 도덕적이며 옳고 무엇이 죄악이며 그르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확인해야 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항상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아니면 머릿속이 혼란스럽거나 우리 세계가 허물어졌을 때, 우리 영혼이 번민에 찼을 때만 아버지를 원하는 것일까?
사실 현대극에서 오이디푸스를 모티프로 쓴 작품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역시 오대수와 미도의 관계, 오대수의 신체 훼손에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은 자신을 파멸시킬 진실을 두려워하면서도 끝까지 파헤친다는 점이 아마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두려운 인간적인 면모에 공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영웅적 면모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 유효한 것 같습니다.
파묵은 책을 느리게 쓰는 걸로 유명합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지만 그가 건지는 건 한 페이지가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쓰고 있을 때는 다른 작품이 떠올라도 진행을 하지 않는데 이 책은 다른 책을 쓰고 있을 때 나온 유일한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