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르한 파묵
흔히들 오르한 파묵을 이야기하면 동서양 간의 갈등을 대변해 주는 작가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 수식어가 주는 부담감은 그에게 꽤나 컸던 거 같습니다. 늘 그의 신작이 나오면 독자나 미디어에서 매번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고 항상 같은 주제만 파고든다고 듣기 때문에 그는 늘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파묵의 책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의 책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쓰이고 어느 정도 부유하게 자라온 그이기 때문에 중산층을 이야기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내면 안에서 무수히 많은 자신을 보여주며 늘 새로운 글들을 시도합니다.
이 책은 8살의 오르한 파묵이 어머니 품에서 이스탄불 도시를 바라본 글로 시작해 소년, 청년 때의 모습과 함께 실려있습니다. 평생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살았고, 소설 배경이 이스탄불이었던 작가가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말하는 이 책에서는 알 수 없는 마치 흑백 티브이를 보는 듯한 회색빛으로 가득합니다. 어린 그의 눈으로 본 과도기적인 이스탄불을 추억하는 거 덕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늘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스탄불 곳곳에 숨어있어서 사는 사람만이 알법한 과도기적인 이스탄불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는 이 책을 두고 22살까지의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을 합니다. 화가가 꿈이던 그는 청소년기에는 이스탄불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스탄불 도시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가이드 북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풍경의 세부적인 것도 아닌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느낌, 감정을 담은 책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작가가 되기 전의 젊은 시절에 품었던 분노와 고민, 도시에 대한 상념들을 잘 펼쳐서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는 자신 안에서 감춰야만 했던 금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안과 밖에 모두 존재하는 금기는 밖이라고 하면 사회적인 것, 법적인 것, 정치적인 것 등을 들 수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안의 금기, 행동방식이 될 수 있고 생각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말을 합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또한 모두가 무감각한 것들, 파묵이 글을 쓰는 목적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그처럼 우리 인간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문제 그 경계에 대해 말하고 그것들을 허물고자 쓴 이유도 설명합니다.
P : 불행이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이스탄불에 대한 파묵의 사랑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탄불의 가난한 변두리 마을까지도 사랑하는 그는, “가난한 변두리 마을이나 폐허, 나무, 풀 같은 자연의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음미하려면, 그 마을, 즉 폐허로 덮인 그 가난한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
파묵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묻어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흑백의 사진 속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이 책을 읽고 도시의 속성이 변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따라 도시를 제각기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일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제가 지내온 날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수많은 인연들과 그들과의 사연들, 설명할 기회도 없이 왜 그때 그래야 했고 왜 놓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들을 가감 없이 담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변명에 묶어 기록할 시간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저에게 더 이상 게으르다고 변명하지 말고 뭔가를 남겨야 한다고 채찍질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