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

by 오르한 파묵

by 무무

가끔 난해하고 불친절한 책들을 접할 때가 있는데 이런 책들을 만나면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작가 자신을 위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책 안에서는 기억의 정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안 그래도 이런 의구심을 갖고 있는 저에게 작가 자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는 파편을 재현하는 데 충실했다고 감히 추측하게 됩니다. 그의 기억 속 어린 시절 경험과 그때 보았던 풍광들, 읽고 접하고 상상했던 것들을 자신만의 세계에 고스란히 재구성하여 되살려 놓은 기억 속 박물관이 된다고 보는데 그의 자서전 <이스탄불>의 허구 버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책 배경이나 설정들이 자전적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이런 시선으로 읽게 되니 책의 배경이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와 이스탄불의 겨울 거리 풍경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이 책의 구성이 독특합니다. 1권이 19장, 2권이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홀수 장은 소설 속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면 짝수 장은 오롯이 제각각 독립된 한 편의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홀수 장은 주인공 갈립이 사라진 아내 뤼야와 사촌 형인 제랄을 찾아 나서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메인 이야기이고, 짝수 장은 갈립이 찾아다니는 제랄이 신문 <밀리예트>에 연재하는 칼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갈립이 제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여기는 것이 이 칼럼들이며 칼럼 속의 내용은 책 곳곳에서 출몰하며 메인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쉽게 읽히고 이해가 잘 되는 책은 분명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이 책은 묘한 마력이 있습니다. 안 읽힐 것 같은데 계속 빠져 읽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몽환적인 매력마저 느껴지는 소설 속 제랄의 칼럼은 다양한 비유와 옛 이슬람 문학에서 따온 것이 많이 있는데 이쪽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조금 어렵다 싶으면 수고롭기는 했지만 역자 주와 책의 맨 뒷부분에 나오는 역자 후기에 기대어 넘기듯이 이해하며 읽었습니다.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 묘사와 사라진 아내와 우산처럼 여기던 사촌 형을 찾아 헤매는 갈립의 꿈꾸는 듯한 여정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합니다.


P :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P :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을 속박하는 몸과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속임수였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얻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집착하고 탐닉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끊임없이 쓰고 읽으며 또 그러기를 원합니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이야기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난해하고 새로이 매력적인 이 책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결국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P 마지막 문장 :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오직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책의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닐까요? 이건 글쓰기가 인생보다 더 경이롭다는 뜻인데 파묵도, 이야기 속 주인공 제랄도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은연중에 감추어 암호처럼 포장한 글을 주고받으며 세상과 벌이는 두뇌게임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파묵에게 글쓰기란 끝없는 자기 고백이고, 혹은 세상과의 밀당이며,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기어이 말하고 싶은 사람의 하나뿐인 해방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