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르한 파묵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스탄불의 배경으로 줄곧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이스탄불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이스탄불을 사랑하는 그가 유일하게 이스탄불이 아닌 다른 곳을 배경으로, 그리고 앞으로 다시 쓰지 않을 정치적인 소설을 쓴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조금은 그에게 있어 특별한 책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한 신문사의 의뢰를 받아 취재를 하기 위해 직접 오래된 터키 스타일의 설국을 찾아갔습니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그가 실명으로 나와 이 유혈극과 비련의 후일담을 들려주고 있는 이 책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터키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마치 채색하응 것과 같이 보여줍니다.
과거 반정부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주인공 카는 이스탄불의 신문사에 있는 벗한테서 임시 기자로 취재에 나서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카르스에서 소녀들이 잇달아 목을 매 자살하고 있는 이유와 임박한 시장 선거를 취재해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카가 이 요청에 응한 것은 사실 카르스에는 그의 옛사랑 이펙이 살고 있다는 이유도 한 몫했습니다. 그녀와 재회한 날 그들의 옆자리에서 카르스의 교육원장이 살해되면서 사건이 급진전됩니다. 이슬람 코란에는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히잡을 쓰라고 쓰여 있지만 서구식 근대화론자인 교육원장은 히잡을 쓰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에게 퇴학 조치를 내려 버린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퍼져 나갈 무렵 시내의 무대에서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상연하던 극단이 청중을 볼모로 근대화를 부르짖는 쿠데타로 나서게 됩니다.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인 케말 파샤를 받드는 우파 케말주의자 배우들이 군인들과 손을 잡고 연극 무대에서 실제 쿠데타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같은 쿠데타가 가능했던 것은 카르스를 외부와 단절해 버리는 폭설 때문이었습니다. 눈(Kar)은 쿠데타를 불러온 유혈의 눈이었고 빈부 격차와 종교 갈등으로 찌든 카르스(Kars)를 하얗게 덮는 정화의 눈, 몇 년째 시를 쓰지 못해 온 카(Ka)에게 사랑과 영감을 일깨워 주는 축복의 눈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신과 이념을 강요하기 위해 탄환을 장전하거나 칼을 빼들지만, 카는 총포 소리마저 묻어 버리며 분분히 내려오는 눈송이들을 보며 “모든 인간의 삶에는 저마다의 눈송이가 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눈의 결정들이 저마다 다르듯이 책 속의 인물들이 놓인 자리도 모두 다릅니다. 저마다 자기가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쿠데타를 반기거나 꺼리며, 히잡을 쓰고 벗습니다. 갖가지 인물들을 불러와 여러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도 했고 작가 본인이 이야기의 비밀을 쥔 작은 신이 되어 책 속에 스리슬쩍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P : 그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여행 내내 두려움이 그를 옥죄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펙이 호텔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의 이성이나 감성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는 짧았던 사랑의 순간을 단지 고통과 수치의 시간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직관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죽도록 두려워했다.
“터키는 백만인의 알마니아인과 3만 명이 넘는 쿠르드인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로 인하여 터키인은 나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에 대해 언급하므로... (왜냐하면 내가 터키의 수치감에 대해 언급하므로.)
2005년에 파묵은 스위스와 독일의 유명 매체들과 인터뷰를 통해 알마니아인의 대학살과 쿠르드인들에 대한 대학살에 언급하였습니다. 실제 터키의 대학살에 대한 언급은 터키에서는 타부로 되어있는데 이로 인하여 그는 터키인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고 법정 문제로까지 가기도 했지만 귄터 그라스, 주세 사라마구,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 유명 작가들의 주선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