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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Dec 16. 2023

은둔자

by 막심 고리키

라디오 헤드의 <Creep>이 세상에 나오고 예상치 못한 메가 히트를 하자, “라디오헤드 노래 = Creep과 기타” 의 이미지가 생겨버려 멤버들이 당시에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곡을 싫어해서라기보다는, 향후 자신들이 더 다양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려고 해도 이 곡이 이미지상으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5집 이후 어느 한 콘서트에서 “이제는 이 노래를 너무나 사랑한다.”라고 해서 팬의 입장에서 감동을 느끼며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리키는 “고리키 = <어머니>” 의 인상이 강합니다. 국내, 특히 아시아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그의 다른 글들은 사실 잘 읽히지 않고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문학의 가교 역할로 추앙받는 그는 여러 편의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썼습니다.


이 단편집은 고리키가 작가 생활 내내 인간과 삶과 이념의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진실을 상당히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초기 10여 년에 걸쳐 발표한 이 7편의 단편들은 어린 시절부터 온갖 하층 직업을 전전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억압적 전제정권에 대한 저항과 혁명운동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던 고리키가 세상의 많은 곡절을 건넌 후에 회한을 느꼈던 탓인지 <은둔자>는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람들을 계몽하지만 세상 속으로 나서지 않는 은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 같으면서도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의 “바보 성자”도 떠오르는 인물인 사벨을 만날 수 있습니다.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한 마디 불평 없이 모두를 수용하고 현재에 충실한 사벨의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모두에게 하느님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은 불교의 여래장 사상과도 통하기도 했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P : “당신을 모욕하다니, 그건 하느님을 모욕한 거야!”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는 씩씩하고 아주 밝아서 말의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 하느님이 어디 있냐고? 당신 영혼에, 당신 가슴에 주님의 혼이 성스럽게 살아 계시지. 당신 형제들은 바보야. 어리석은 짓으로 주님을 욕보인 게야. 그 바보들을 안 됐다고 불쌍히 여겨야 돼. 물론 잘못했지. 하느님을 욕보이는 건 어린애가 제 부모를 욕보이는 짓과 같아……”

그리고 다시 노래하듯 말했다.

“오, 밀라야……”

나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익숙한 단어에 그렇게 기쁨에 찬 다정함이 담길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고 그런 걸 들어본 적도 없었다.



1899년 깡마르고 허름한 차림새에 투박한 농민용 외투를 걸치고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난 고리키는 당대 문학인들에게 말 그대로 민중 속으로부터 걸어 나온 인물이었습니다. 최하층 부랑자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된 고리키는 일약 러시아 저항문학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고리키는 사후에도 소련 정권에 의해 문화예술분야에서 레닌에 버금갈 정도로 추앙됐으나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별 예술성 없는 그의 문학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부풀려졌는지를 논증하는 기사들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란은 오래가지 못하고 2000년대에 들어 러시아 문학계는 다시 차분히 고리키에 대해 주목합니다. 오히려 이념적 회오리에 사로잡히지 않은 보다 냉정한 재평가 속에서 고리키는 새롭게 조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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