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
흑백 뉴스에 6·25 전쟁 직후의 기록영상에서 보면 언뜻 색깔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후 세대가 하얀 밀가루 같은 거를 뒤집어쓴 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화학품은 DDT였으며 지금은 거의 볼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이나 벼룩, 빈대 같은 해충들을 말끔히 정리해 주었습니다. 사실 기적이라고 불렸던 DDT는 스위스의 과학자인 파울 뮐러에 의해 식물이나 인체에 해가 적고, 안정적이며 즉시 효과를 나타내는 접촉성 살충제로 개발되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 말라리아나 발진티푸스로 고통받는 병사가 전장에서 부상이나 사망하는 수와 맞먹는 시기에 매개 곤충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살충제는 전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큰 걱정거리를 해결해 줬습니다. 이에 공로를 인정받아 뮬러 박사는 194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DDT는 전 세계적으로 만능 살충제로써 사용됐습니다.
효과적이고 안전한 살충제로 엄청난 양이 사용되고 있던 DDT의 거침없는 질주에 급제동이 걸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바로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 이 그 발목을 잡았습니다.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었고 살충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습니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새들의 알껍데기가 얇아져서 제대로 부화할 수 없고 해충뿐만 아니라 대부분 곤충이 사라지게 돼 먹이사슬이 파괴되는 결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침묵의 봄을 맞게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DDT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살충력이 있지만 자연 분해가 매우 늦게 일어나 오랜 시간 동안 환경 속에 잔류하며 생물들을 오염시켜 먹이사슬을 통해 상위그룹 생물에게 축적되었습니다. 또한 인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돼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었고 마치 인류를 해충으로부터 구원할 것 같은 기대 속에 사용됐지만, 결국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퇴출당해 버렸습니다.
이 책은 결과가 더 놀랍습니다. 경고를 한 환경운동가의 소리로만 듣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는데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 인식이 거의 없던 시기에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났고 해충 박멸에 집중됐던 시선을 환경과 생태계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대형 화학 회사들은 비난과 협박으로 레이철 카슨에게 압력을 행사했고 반대로 여론과 시민들은 그녀의 편에 서서 끝까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주장했습니다. 출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환경운동이 급속하게 퍼지게 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1969년에 미국에서 국가 차원의 환경 정책이 수립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미국 환경청이 설립돼 환경 정책과 규제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게 됐고 결국 1972년 DDT에 대해 사용금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P 첫 문장 : 미국 대륙 한가운데쯤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하나 있다.
P 34 :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자취를 감춘 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몇 마리의 새조차 다 죽어가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고 날지도 못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1962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DDT 등 살충제 부작용 문제를 조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카슨 씨의 책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지금 그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라고 답을 합니다. 그 이후로 하나씩 일이 진행되어 미국의 대기오염방지법(1963년), 수질오염방지법(1972년), 멸종위기종 보호법(1973년)이 제정되었고, 1970년 <지구의 날>까지 제정되는 등 한 작가의 책이 여러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운동을 시작하고 그 운동이 마침내 홀로 서도록 한 게 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