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얼 프레스
사람마다 양심의 모양이 제각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각자 나름의 가치관이 있기에 그걸 모두 똑같이 존중하고 다 양심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법률용어상의 양심과 일상의 양심은 다른 뜻이라며 이 문제를 넘어가려고 하는 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제게는 그런 얼렁뚱땅 넘어가는 설명이 고의적인 논점 흐리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문을 가진채 살아오던 저에게 이 책은 나름의 해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상식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고 학식 깊은 이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서 노라고 답하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저는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맞다고 답했다가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구분해 낼 수 있는 쉬운 그림을 놓고 다른 이들이 모두 오답을 말하자 눈치를 보다가 따라서 오답을 말한 이들이 75%나 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는 걸로 봐서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변을 많이 의식한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출신 인권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얼 프레스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신념을 지킨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을 추적해 기록한 책입니다. 작가는 그들이 어떤 연유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주목했고 특히 눈여겨본 이들은 조직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거나 전복을 원한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기에 기록하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대개 평소에도 전통과 권위에 수시로 도전하는 등 반항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접근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지난 100년간 평범한 사람들이 양심에 따라 과감한 선택을 한 4가지 예를 각 장에서 차례로 소개합니다. 한 예로 1938년 스위스의 파울 그뤼닝거 경찰서장은 국경을 넘으려는 유대인 소년을 도와줍니다. “난민자를 받지 마라” 는 당국의 지시를 어긴 죄로 경찰서장 직위를 박탈당하고 이후 초라한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거창한 신념에 따라 양심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디다. 본능적으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었기에 행동했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매달리고 또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겠다고 울부짖는 광경을 반복해서 목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국에는 더는 참지 못하고 저처럼 행동했을 겁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또 한 사례는 손실 위험이 큰 금융 상품을 고객에게 팔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해고당한 레일라 와일더 전 스탠퍼드 그룹 투자자문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옳은 일이니까요"라고 다소 담담한 반응을 드러냅니다.
P 13 :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해소할 수 없는 긴장이 가득하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마음속 깊은 곳에 세워둔 자신이 충성심 혹은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의무와 충돌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우리는 양심을 깨끗하게 간직한 채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해 왔으며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우리 머릿속에 있는 어떤 목소리가 우리에게 말한다, 양심을 지키라고. 그러나 또 다른 목소리는 경고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적으로 돌리지 말라고, 자신의 상관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말라고. 혹은 자신의 경력과 명성, 나아가 가족의 평온함과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지 말라고.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저자가 침묵하지 말고 분노하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떠한 행동을 강요를 하지 않고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둔 채 아름다운 영혼들의 이야기를 조용하고 무덤덤하게 전합니다. 그럼에도 유명 강연자의 열정적인 강의보다 더 큰 울림을 전달해 줍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내린 의미 있는 결단들에 대해 "양심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가장 평범하게 고수했던 것뿐"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언제나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그러한 선택을 한 이들에게 관심과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것을 잊지 말자"라고 저자는 책을 쓴 의도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PS 그래서 그런지 알베르 카뮈의 ‘연민'은 큰일에는 원칙을 적용하되, 사소한 일상에서는 인간적인 연민과 자비심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