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by 무무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국어 수업들 때문에(?) 시의 재미를 느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화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할 거 같았고 의미를 찾으려고만 했었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넌 이걸 이해하기에는 어리다거나 정석이나 한번 더 보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란 저는 좋아했던 책을 내려놓아야 했고 남자는 기술이라며 이과를 가야 했지만 정신이 들었던 그 순간 대학은 반기로 교차지원을 하였습니다. 고전시가를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데 이해해야 했고 잘라서 읽어야만 했던 김승옥 작가님의 <1964년 서울>은 흥미를 없애주었습니다. (이 대단한 작품을 나중에서야 읽고 감동했습니다)


손택이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4년의 일입니다. 그녀가 세상에 발표한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대한 단상>이라는 두 편의 도전적인 글 때문이었습니다. 때마침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가 <소설의 죽음>을 선언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던 해인데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한 손택의 두 에세이는 모더니즘의 종언을 선포한 피들러의 글과 더불어 1960년대 반문화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 선언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녀가 반기를 들었던 대상은 “시의 이해” 와 “소설의 이해”였습니다. 고전이나 소설 심지어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고정화된 해석을 부여하려 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손택은 우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 이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합니다. 모방 이론은 모방의 대상 곧 내용을 중시하며 그 내용을 밝혀내려는 시도인 해석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러한 해석이라는 작업이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보다는 작품의 외적 요소인 전통적 가치나 도덕적 진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들의 옹호를 통해 작품을 정전화한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녀는 심지어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는 예술작품들까지도 비평가들이 의도적 해석을 통해 길들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며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말을 주창합니다.


손택은 그것을 예술의 성애학이라고 부르며 해석을 위한 해석을 비판합니다. 예술의 본질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인데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해석은 예술에 대한 강간 행위가 된다며 신비평과 모더니즘에 반대하며 1960년대에 시작된 고정된 해석에 반대하는 새로운 감수성의 문학을 이렇게 탄생시켰습니다. 그녀는 형식도 내용만큼 중요하다고 말하며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하는 더 포괄적인 개념인 스타일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합니다. 스타일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자연히 캠프 이론으로 이어지는데 캠프는 교양과 도덕과 내용을 중시하는 제도권과는 반대에 있는 것으로 스타일과 즐거움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반문화적 성향을 지칭합니다.


이 책이 대단했던 이유는 한 시대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탁월한 문화론들을 모은 것입니다. 손택은 이 책에서 내용과 형식 그리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구분을 명쾌하게 해체하였고 모든 것의 경계가 소멸하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는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미 1960년대 중반에 21세기에 일어날 현상들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급격한 인식의 변화를 겪었던 1960년대의 시대적 성찰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기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예견하고 있는 예언서와도 같은 책이었습니다.


P 첫 문장 : 인류가 최초로 경험한 예술은 분명히 주술적이고 마술적이었을 것이다.


P 26 : 해석의 호전성은 특히 문학에서 한층 더 극성이다. 카프카, 베케트... 프루스트, 조이스, 포크너, 릴케, 로런스, 지드 등.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기를 의도했냐 안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작품이 지닌 가치는 필시 거기에 담긴 '의미'가 아닌, 어딘가 딴 데에서 찾아야 한다.


그녀는 상업주의와 전자매체에 의해 예술이 쇠퇴하고 있다는 위기론을 보면서 “우리가 얻게 될 것은 예술의 쇠퇴가 아니라, 예술의 기능 변화다.”라고 열린 시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오늘날 예술의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바이블이 되는 이유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