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
어느 한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 파리에 3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현대 도시를 건축하자는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받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개발론자처럼 보이는 건축가는 그렇다고 파리의 개선문과 루브르궁을 철거하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건물을 보존하면서 파리가 현대 도시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파리는 1851년에서 1870년까지 진행된 파리 개조 계획에 의해 이미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직선 도로가 생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인물 중 유일하게 건축가로 이름을 올린 르 코르뷔지에는 좀 더 먼 미래를, 획기적인 도시 계획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파리는 누구에게나 낭만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조량 등을 감안하지 않고 전통만 중시하다 보니 건물이 대체로 어두컴컴하고 습했다고 합니다. 마차가 달리는 도로에 차가 달리고, 보행자와 뒤엉켜 사고가 많았으며 폐병 환자들이 많았을 정도로 위생문제 또한 심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보수 건축계의 기득권 세력들은 계속 전통만을 추구했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도시 계획안은 기존 그들에게 가히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전통만 고수하는 건축가들을 “독이 든 우유를 도시로 팔러 오는 우유 장사꾼”이라고 대놓고 비난했으며 도시의 상황이 심각한데 이를 외면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외면하는 건축계를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형태는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대에 파리에서 구상했던 것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마르세유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예를 들면 이곳은 1600명이 거주하는 한 동에 23개의 다른 평면형 주택과 337 가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독신자부터 자녀가 7명인 가정까지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소화할 수 있게 설계되었고 방문자를 위한 호텔 객실부터 세탁소, 약국, 가게도 있고 옥상에는 유치원, 실내 운동장, 카페테리아와 300m의 조깅트랙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완공된 지 70년도 지났지만 여전히 주민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이렇게 가족 단위의 편의성과 각 가구의 독립성 및 정체성을 고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원래 구상하고 설계한 아파트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었고, 다소 적은 시공비용 내에서 이 모든 것들을 충족시켰습니다.
이 책은 1920년부터 3년간 <에스프리 누보>에 발표한 자신의 글 10편을 모아서 엮은 것입니다. 자신의 건축관을 우리들에게 소개해줍니다. 자연을 조화와 아름다움이 일치된 기계로 인식하고, 그러한 자연의 완전한 기계 윤리를 건축과 연결시켜 새로운 환경창조의 도구로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이며, 이때 기계는 합리적이고 완벽한 조화의 기하학적 법칙을 상징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P : 예술, 그것은 시다. 감각의 감동이자 측정하고 감상하는 정신의 기쁨이며, 우리 존재의 깊은 곳을 감화시키는 축의 원리에 대한 인식이다. 예술, 그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창조의 최고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창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통해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보면 약점이 보입니다. 형태에 집착해 눈길을 끌기에 급급하고 자연광에 둔감하고 공간성도 활용적이지 못하며 실용성에 충실하지도 그렇다고 초월하지도 못한 듯합니다. 낙선재와 같이 기둥의 묘미가 살아있던 우리 건축의 역사성은 온데간데없고 진취성도 없어 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학의 진보, 기술의 상상력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왜 건설이 경제성에 매몰되어야 하는지 아직은 이해 못 하는 1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