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유토피아

by 무무

유토피아 - 토머스 모어 [펭귄클래식]


많은 책들이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고 작가 스스로도 대화 형식의 조상급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하였는 걸로 봐서 이 형식이 이상향에 대한 선학들의 사유를 이어받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상향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라파엘이 설명하고 대화에 등장하는 모어는 기껏 “그런 세상이 있습니까?” 정도로 맞장구만 칩니다. 심지어 모어는 이상향에 대한 라파엘의 설명에 반박하고 반문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들이 대부분 선택한 수단이었고 현실과의 단절을 감행하는, 시대를 앞서간 이상주의자들이 취하는 안전한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모어는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 유토피아라는 섬에 하선해 5년 이상 체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어는 최상의 정치체제, 이상적 대의제도와 자치의 규모, 사유재산이 없는 공유경제, 일과 배움을 즐기는 삶, 도시와 농촌의 조화로운 발전, 최소한의 법률로 유지되는 도덕적 사회, 좋은 결혼과 세상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유토피아는 하나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직경이 200마일 정도입니다. 이 섬에는 54개의 훌륭한 도시가 있고 도시 간의 최단거리는 24마일 정도이며 각 동네는 30가구로 이루어져 있고 각 가구에는 최대 40명이 생활합니다.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300년 전에 사유재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표현에 의하면 각자의 재산이 없기 때문에 집 자체는 추첨에 의해 할당되고 10년마다 바꿉니다. 시골과 도시 사이에도 매년 거주자의 이동이 있고 시골에서 2년을 보낸 사람은 도시로 가고, 다른 20명이 시골로 갑니다. 사람들은 거짓이나 호사스러운 장식을 싫어해 금을 요강과 죄수의 수갑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사람들에게는 재산이 균등하게 분배되고 하루 6시간 노동을 하며 집은 3층 집으로 지어졌고, 유토피아 사람들은 집 앞의 정원 가꾸는 일을 좋아하는 걸로 되어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거는 이들은 돈을 사용하지 않아 돈과 이윤을 추구하려는 열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150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실제로 알려지기에 토머스 모어가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했다거나,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영국의 성공회가 분리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형을 당한 진정한 이유는 유토피아를 꿈꾼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진실한 사람들은 세상과 어울릴 수가 없었고, 순수한 이상주의자들을 세상은 수용하지 못하는 게 지금과 같은 현실입니다.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강론하다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당해야 했던 소크라테스도 그어했듯이 모어도 비슷했습니다. 모어는 영국의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가톨릭과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국교인 성공회를 출범시키는데 앤 블린에게는 잉글랜드 여왕이라는 관을 씌워 주려 하지만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퇴한 후 앤 여왕의 대관식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대관식 불참은 앤 여왕에 대한 거부로 영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졌고, 결국 헨리 국왕은 사형을 명령했습니다.

P : 인간의 행복은 어떤 요인에 달려 있는가. 가능한 최고로 안락하고 명랑하게 인생을 살아나가며 다른 모든 인간들도 그렇게 살도록 도우라.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영국 사람이었음에도 초판은 영국에서 출판되지 못했고 그의 친구였던 네덜란드 태생 에라스무스에게 초고 형태로 보냅니다. 초판은 1516년 12월 벨기에 루뱅에서 라틴어로 출간됐습니다. 초판이 출간될 당시 원래 제목은 <최선의 정치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 였는데 모어가 에라스무스에게 처음 글을 보낼 때 붙였던 제목은 라틴어인 <Nusquama>로 하려고 했지만 몇 번에 걸친 에라스무스와의 서신 전달 과정에서 이 제목은 희랍어 ‘ou(없는)’와 ‘topos(장소)’가 합성된 <유토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라파엘이라는 인물의 탄생은 포르투갈의 위대한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항해할 때 타고 갔던 배의 명칭에서 따왔거나 아니면 그때 탐험선에 타고 있던 항해사의 실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