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감상문

이 날을 위한 우산

by 무무

이 날을 위한 우산 - 빌헬름 게나치노 [문학동네]


제목이 눈에 띄어서 골랐던 책이었지만 사실 읽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붙잡고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제 인생의 어떠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애인을 잃는 모습, 자신감과 용기를 상실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제 모습과 자꾸만 겹쳐 보였습니다. 여러분들도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불편하고 마음 아프고 종종 참을 수 없이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늘 하던 대로 감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새로 나온 구두를 신고 하염없이 걷습니다. 그야말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뗍니다. 단순히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위한 산책이 아닌 철저하게 직업적으로 걷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마주했을 때 하던 일을 평소와 다름없이 행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어렵고 울분을 삭이는데 써야 할 힘까지 일상에 통째로 바쳐야 했습니다. 힘내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체념은 필요하지만 체념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삶은 급기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은 그래서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합니다. 별달리 잘하는 게 없었던 주인공은 시계 바늘만 망연히 바라보고 있지 않고 어떻게든 견뎌야 했기에 난국을 타개하려 합니다.


어떤 일을 타개하기 위해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서 언제나 거창한 결심이나 신박한 비책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럴 때일수록 심하게 동요하지 않고 원래의 자리에서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이를 악물고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가까스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영화 <파이트 클럽>처럼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주인공만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을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3인칭이 아니라 조금 더 가까이 우리 곁에 놔둬서 인물들을 바라봅니다. 그가 바로 나이고 너이고 우리이므로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혼잣말을 많이 합니다. 모두가 다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고 우리는 묵묵히 우리 몫을 하면 된다고 이 책에서 작가는 말하고 싶어 합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마지막 마침표 다음에 새로운 문장을 적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스스로 이날을 위한 우산이 되어 세차게 쏟아지는 이 세계의 비를 맞는 우리들에게 괜찮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내일은 오늘과 같거나 아주 조금 다를 것이고 그걸 불행이라고 여기거나 다행이라고 긍정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우산이 되거나 어떤 빗줄기도 막아낼 수 있는 튼튼한 우산이 되거나 하는 것은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P 158 : 갑자기 난 내가 기본적으로 늘 품고 있는 어떤 느낌 속으로 빠져든다. 나 자신이 항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고, 그 때문에 마치 실수로 살아가는 듯한 느낌 말이다. 그때 부드러운 수잔네의 육체가 내게 어린아이가 갖는 신뢰를 느끼게 한다. 실수로 살아간다는 느낌은 제어가 되지 않는 탓에 굴욕적인 작은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바뀐다. 그러한 느낌도 내게는 친숙하다. 난 실패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난 삶을 계속 이어간다.


비평가들은 이 책을 두고 “경이롭고 철학적인 책” “매혹적인 소설, 가볍고 명료하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교육만 많이 받은 아웃사이더” “현대판 거지”라고 칭하며, 수제화의 편안함이나 감정을 하는 일로 먹고삽니다. 작가는 이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인물들의 평범하고 틀에 박힌 일상을 통해 그래도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전합니다. 그렇기에 <이날을 위한 우산>은 고통으로 가득 찬 먼지투성이의 삶을 묵묵히 몸으로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신의 삶이 하염없이 비만 내리는 날일 뿐이고, 자신의 육체는 이런 날을 위한 우산일 뿐이라고 느끼는 그런 사람들” 에게 받친다고 작가는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