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르한 파묵
색으로 만드는 글, 그리고 그 그림을 완성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르한 파묵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의 책 제목에는 거의 색이 들어가 있어서 그 채색을 우리가 글로 바라보며 완성된 세계를 읽고 있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런 그의 일상적인 세계가 궁금해 그의 인터뷰를 찾아도 봤었고, 99년에 나온 이 책의 영어 번역본으로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번역으로 다가온 건 이 책이 나오고 거의 15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그에게 <이스탄불>, <소설과 소설가> 그리고 이 책만이 논픽션으로 분류가 됩니다. <이스탄불>은 도시의 관한 그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소설과 소설가>에서는 소설에 대한 그의 나름의 이론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드디어 자신의 생각과 일반적인 모습들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하루 10시간을 책상에 앉아 1장도 채 쓰지 못하는 집필의 고통과 희열과 평소 그가 읽거나 직접 바라본 소설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터키 인권의 현실과 풍경을 이야기하고 눈에 넣어 아깝지 않은 딸 뤼야를 향한 짝사랑 등 그의 세계가 촘촘히 펼쳐져 있습니다.
그는 매일 치료약을 한 수저씩 삼켜야 하는 환자처럼 문학이란 약을 복용해야만 하는 자기의 불치병을 고백하며 글의 시작을 알립니다. “매일 섭취해야 하는 문학의 복용량”을 언급한 파묵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 가장 커다란 행복은 매일 반 페이지씩 만족스러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털어놓습니다. 원하는 문학을 복용하지 못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곳으로 변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는 쓰는 삶이 늘 행복한 건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씁니까?”란 질문은 파묵을 “예술과 문학은 사치다”란 인식과 “순문학 소설이란 뭔가”라는 질문의 사이로 몰아세웁니다. 파묵은 진정성을 향한 깊은 바람으로 자기가 추구해 온 문학의 결론을 이 책에서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문학의 당위성과 쓰는 삶의 가능성으로 질문의 답은 확장되고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가 바라본 소설가들에 관한 이야기도 이 책의 재미입니다. 보르헤스가 “나는 햄릿과 라스콜리니코프(<죄와 벌> 주인공)의 중간쯤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가 말한 대목을 거론하며 파묵은 “보르헤스의 위치는 카프카와 비교할 수 있다. 카프카가 작가적 정체성을 저절로 찾은 데 반해 보르헤스는 평생에 걸쳐 집착적으로 그것을 형성했다.”라고 평합니다. 그가 가장 길게 또 많은 장을 할애해 거론한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파묵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두고 “문학사의 위대한 발명은 계산하고 계획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작가들이 상상력에 끝까지 매달리며 고심해야만 한다.”라고 칭송합니다. <악령>을 언급하면서 인간이 써낸 가장 충격적인 예닐곱 편의 소설 중 하나이고 가장 위대한 정치 소설이라고 극찬합니다.
P : 책을 넣고 다니는 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과 같다.
P : 책의 제목은 마치 사람의 이름과 같다.
삶의 스펙트럼이 다르다면 한 명의 인간은 그 스펙트럼에 놓인 하나의 색이랑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종다양한 종류의 색이 모여 이 세계의 풍경을 이루고 있으며 소설가, 독자, 아빠로서 자기가 찾아온 색을 한 권의 책으로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색 즉, 타인의 색을 바라보려는 다짐을 드러냅니다. <다른 색들>은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인간 삶을 찾아 나서려는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의지와 동의어로 읽힙니다.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은 600페이지가 넘고 수록된 글도 70편에 이릅니다. 긴 글도 있고 짧은 글도 있고 묵직한 글도 있고 경쾌한 글도 있어서 여러 가지로 재밌습니다. 각각의 에세이는 파묵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어처럼 읽힙니다. 순서대로 읽어나가도 되고 마음에 드는 제목이나 주제를 골라 구경하듯 읽어도 좋을 책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말은 10시간씩 30년에 걸쳐 글을 써왔고 앞으로 30년간 더 글을 쓰기를 소망하는 그의 말이 앞으로 그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