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by 로맹 가리

by 무무

1970년대에 이 책이 나오고 나서 프랑스에서 이른바 자신들이 문학청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치 가방인 양 이 책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두고 16개의 인간 탐구 보고서라고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얼핏 보면 뚫린 가슴으로 시린 바람이 지나가는 듯,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을 앞에 두고 한없는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새들은 페루라는 그 먼 곳까지 가서 죽어야 하는지,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지 아님 새들의 이야기일지, 연약한 가슴을 표현하는 새를 빗댄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나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인지, 연어들처럼 새들도 회귀본능이 있는 것인지, 모든 새들의 고향이 페루인 것인지, 등등 제목부터 상상하게 만들어 설레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로맹 가리는 저의 이런 수많은 의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책 속에 글들로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기하게도 그 답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한 편의 멋진 그림 같은 이 책은 잿빛 하늘과 바다, 새, 모래언덕 등의 단색 그림과 에메랄드 빛 원피스와 초록색 스카프, 사육제의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이 든 알록달록 색들의 조화를 이루는 몽환적인 한 편의 추상화이며 풍경화였습니다. 정말로 가슴으로 읽으면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신비한 작품입니다.



P :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페루의 외딴 바닷가, 먼 섬의 새들만이 날아와 죽어가는 세계의 끝, 그곳에 달랑 카페 하나 차리고 세상과 희망, 사랑조차 부정하며 사는 47세 남자가 있고 거기에 한 여자가 다가옵니다. 새처럼 죽기 위해 온 그녀를 구하면서 사그라진 줄 알았던 자신의 희망도 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여자는 새들이 왜 이 한적한 바닷가에 날아와서 죽어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떠나갑니다. 군더더기 없이 슬프고 담담하게 그러낸 마지막을 보며 아무도 없는 그곳, 텅 빈 카페는 로맹 가리 자신의 최후를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생이란 희망을 접으려 할 때쯤 슬그머니 새 희망이 고개를 들고 그걸 쥐려는 순간 또 달아나는 숨바꼭질 같은 것이라고 늘 생각했던 로맹가리는 결국 한적한 세계의 끝으로 날아가 널브러져 죽는 새들처럼 공허한 것임을 주마등처럼 보여줍니다. 많은 이유와 설명은 그럴듯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는 삶을 정말로 아련히 그려낸 이 단편이 항상 가슴속에 남습니다.


표제작 이외의 작품들도 좋았습니다. 인간은 모랫바닥에 떨어져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새를 신발 뒤축으로 짓이기는 잔인한 존재라고 고발을 합니다. 허영과 위선에 눈이 먼 한심한 군상을 표현하기도 하고, 체면과 품위와 명예,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황당한 삶의 편린들을 만들어내는지 끝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P : 조심스러움에 익숙한 성격, 열정의 부를 쾌적하게 암시하는 듯한 저기압의 기후 속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기질, 줄곧 묵직하고 차분하게 늘어드려 진 커튼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너무나 창백한 안색, 이 모든 것들이 그녀로 하여금 지중해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색채와 향기와 소리의 정글로 여기게 했다.



프랑스어를 왜 공부했냐고 묻는 질문에 로맹 가리의 책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이기적이어서 가끔은 좋은 책을 읽을 때면 아직도 가슴이 뛰고 그 사실을 누구에게든 비밀로 부치고 싶은, 마치 나만 알고 싶은 한 앨범의 숨은 명곡 같은 이 책이 저에게는 그렇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