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잇또잇
마치 암호 같아서였는지, 아니면 이 단어가 우리들에게 한 없이 귀엽게 다가온 것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또렷하게”를 어떻게 실수로 “또잇또잇”이라고 문자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왜 그렇게 웃기고 좋았을까요? 그저 오타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그 이후로 그 단어를 통화를 할 때도 많이 사용했어요. 덕분에 우리는 좀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준 것 같아서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궁금했어요.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적확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내 친구가 이 단어에서 무엇을 느꼈었고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는지. 무심코 핸드폰 넘기는데 사진첩에서 추억의 어디 어디가 나타나서 몇 년 전에 잠시 당신을 보러 갔던 제주도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잊을 채 한참을 머물게 되었어요.
잠시 보러 가도 돼?
그렇게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당신에게 갔어요. 궁금했던 당신의 작업 공간에서 만나 믹스커피를 마시며 잠시 바닥을 때리는 비를 바라보았어요. 서로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은 채 그 장면을 아니 그 소리를 같은 시선으로 느꼈었어요. 잠시 쉬기로 한 비의 큰 뜻을 알고 이 기회를 틈 타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지요. 버스를 타면서 대화가 어찌나 재밌었는지 주변을 인식하지 못해 소리가 커진 줄도 모르고 기사님에게 주의를 듣기도 해서 뻘쭘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화들이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 순간들이 소중해서 마음속의 사진첩으로 저장되어 있어요. 몇십 년 만에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았고 말을 이어가며 무작정 걸었죠. 우리를 쫓아오던 귀여운 강아지와 바다냄새, 지나가는 사람들, 강하게 불던 바닷바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무작정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 싶게 만들게끔 기억이 너무나 선명해 괴롭기도 해요.
간단한 점심도 기억이 나요. 제주도랑 어울리지 않을 법한 비빔밥이었어요. 옛날 집을 개조해서 만든 그 식당과 마주 앉아서 대화하며 먹었던 비빔밥이 이제는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게 만드는 대명사가 되고 말았어요. 사진첩에도 남아있네요. 밥을 먹고 조그마한 시골 도서관에 들려 책을 둘러보았죠. 당신이 좋아하는 얇은 그림책을 내게 건네서 나는 벽에 기대어 읽었고, 책의 숲을 산책하는 내 소울메이트의 모습을 시선을 번갈아 가며 보았죠. 복도에 나서서 우리들의 운명과도 같은 책에 대한 토론을 하며 서점까지 걸었어요.
27381, 이 날 당신과 함께한 내 발걸음 수예요.
이 날 놀랐던 일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 서점에서 일어났어요. 서로 한마디 상의도 없었는데 책 한 권씩을 서로에게 주고 말았죠. 같은 마음이라는 게 뭔지 알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어버렸던 그 책이 제 책장이 아닌 책상에 늘 놓여있어요. 오며 가며 그렇게 매일 바라봐요. 그 책이 인생의 선물 같이 느껴졌거든요. 서점 옆에 있는 카페에 들러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당신과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작가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게 신기롭다 못해 신비했어요. 어떠한 힌트나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꿈과 당신의 꿈이 이어지는 황홀한 경험을 했네요.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내가 기다리던 노래가 떡 하니 나와서 심장이 멈춰버렸던 그 순간처럼 말이에요.
헤어짐이 아쉬웠던 낯섦이 느껴지지 않던 처음 보는 그 버스정류장 앞, 당신의 모습이 가끔 꿈에 나타나요. 그럴 때마다 잘 안 보는 책이 있는 책장 밑 상자 안에서 내게 보내주었던 손 편지와 엽서들을 들춰보고는 해요. 지금은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서 이 그리움과 먹먹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계절이 와버려서 그런 걸까요? 마음속으로 늘 응원하는 내 소울메이트였던 당신이 쌀쌀해지는 날씨 때문인지 많이 그리워지는 날이네요.
바다는 잘 있나요? “또잇또잇”하게 내 마음을 그리고 안부를 묻고 싶은 새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