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밀 아자르
지금의 파파라치 같은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로맹 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예인들 못지않게 작가들도 미디어와 일반인들에게 타깃이 되었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법도 한데 로맹 가리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쓰는 작품은 응원의 메시지보다 비평가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짓밟혔고 그것을 보고 일반 대중들은 손가락질을 했기에 그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잠시 옆으로 미뤄둡니다. 그리고 생각해 낸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로 했고 발표한 첫 번째 작품이 이 책이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문학적 삶을 쇄신하고 싶어 했고 비평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마음으로 출간하였는데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특급 신인을 찾으러 미디어 들은 몰렸지만 에밀 아자르를 찾을 수 없었고 흐뭇하게 이 모든 걸 지켜보던 그는 자신감마저 붙어 일 년 뒤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하였고 작가로서의 절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소외, 도시의 반자연적인 속성을 건드리는데 주인공 쿠쟁이 비단뱀을 기르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과 심리적 변화를 그립니다. 작가는 대도시 파리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이며, 또한 그것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되어버렸음을 한탄하면서 생태학적인 서사를 전개하는데 방식이나 이야기의 흐름이 신선합니다. 신선함만큼이나 특이하고 낯설어서 쿠쟁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뱀이 똬리를 틀고 굽이치며 앞으로 나아가듯 소설 또한 마치 횡설수설하듯 주제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하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단어의 사용에서도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를 장난처럼 사용하면서 의미의 고정된 망을 흔들기에 이해하려면 프랑스어 원문도 찾아가면서 읽어서 그런지 평소 바다 조금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P : 나는 뜻을 모르는 표현을 자주 신중히 사용해. 적어도 거기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이해를 못 하면 가능성이 있는 거야. 그게 내 인생관이야. 나는 항상 주위에서 모르는 표현을 찾지 그러면 적어도 그게 다른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라.
쿠쟁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러한 말장난을 획일화된 사회를 흔들고 새로운 관계의 희망을 찾는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그로 칼랭은 “큰 포옹”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쿠쟁이 비단뱀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준 것은 비단뱀이 그를 칭칭 감아 조이면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과 이해가 뱀의 이미지처럼 꺼림칙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쿠쟁이 좋아하는 드레퓌스가 사무실 일은 지루하고 의미가 없다며 사창가에서 매춘을 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에서 이 일이 더 생기 넘치고 변화무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구체적인 접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에밀 아지르는 하고 싶었던 같습니다.
P : 어느 시대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어찌 된 일인지 우리에게 순환 체계가 없는 탓에 그 인심과 우정의 잉여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문제의 큰 강이 비뇨기관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안에서 보이지 않게 열린 놀라운 열매가 썩어 내부로 떨어지는데, 그것을 전부 그로칼랭에게 줄 수는 없다. 비단뱀은 지극히 절식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4년, 거의 반세기 전의 파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거대 사회의 문제가 드러났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여전한 우리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이 여전히 공감된다는 것이 조금은 슬펐습니다.
처음 이 책이 출판되면서 출판업자들의 의도에 따라 결말이 수정되어 선을 보였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작가가 의도한 결말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두 결말을 다 보여줍니다. 매끄러운 것은 출판업자의 요청에 의해 수정된 초판의 결말이지만 아자르가 쓴 결말은 여운을 남기며 파리라는 대도시에 쿠쟁을 쓸쓸히 남기는 것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