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로맹 가리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은 아마 로맹가리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습니다. 프랑스에는 바벨리오라는 책에 대해 평가하는 곳이 있는데 독자들이 책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쓰고 별점을 주는 형태인 이곳에서 별점 1점 테러를 받았습니다. 1966년 진 세버그와 함께 바르샤바로 간 로맹 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미친 소설이 탄생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했습니다. 그래도 책은 50년 동안 절판된 적 없이 꾸준히 팔렸고 지금은 별점은 3개까지 올라왔습니다. 아마 그의 신랄한 유머, 기민한 문체, 정곡을 찌르는 놀라운 문학적 표현 감각을 지금은 사람들이 너그러이 받아들였고 동시에 나치나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해하기 쉬워져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아직도 난해한 책이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를 합니다. 벽돌 책 보다 무서운 책이라며 이야기를 하는데 악동끼 있는 장난과 독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려고 쓴 책이라는 저는 생각이 듭니다.
1964년, <흰 개>를 쓴 후에 로맹가리의 시선은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부헨발트, 오라두르로 향합니다.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이전부터 쓰고 싶었으나 쓰다 지우고를 몇 번을 해야 했고 머릿속으로만 맴돌기만 했는데 드디어 쓰일 소재가 생긴 것입니다. 그 시대에 벌어진 일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을 수 있나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바르샤바로 장소로 옮겨 글을 쓰기 시작하여 1966년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 전 작품에서의 분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로맹 가리는 이곳에서 그의 블랙 유머를 온 힘을 다해 쏟아냈습니다. 늘 부러워하는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더없이 적나라하지만 한편으로는 겸허한 표현으로 마무리를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징기스 콘은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독일 나치 SS대원 샤츠에 의해 죽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유령이 되어 그의 집에 들어가 살며 유대인 희극배우로 삽니다. 설정도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다르게 보았습니다. 독일은 유대인들에게 점거되어 현존하지 않지만 그들의 존재를 느끼며 거리마다 그 자리에 없는 유대인들이 가득 채우며 죽은 자가 산 자를 붙잡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콘은 샤츠에게 떨어지지 않고 광대처럼 계속 춤을 추며 그를 비웃으며 따라다닙니다. 샤츠에게 죄책감을 안기기 위해서입니다.
웃음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될 때까지 죽은 600만 유대인은 독일을 떠나지 않았고 그들의 의무라도 된 것처럼 남았습니다. 그 시대의 독일인들은 그저 복종했고, 명령을 수행했을 뿐인데 이 양심의 가책이 너무도 큰 것임을 알았습니다. 전범들은 재취업을 했고 유대 귀신 콘의 유일무이한 최후의 관객 경찰 서장 샤츠를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22년째 함께 했고 매 순간 샤츠는 모든 것을 비극으로 받아들입니다.
P : 의식이란 인간을 전제한다.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유난히 경계심이 든다. 신이라면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한계를 안다, 그리 대단치 안다는 것을. 하지만 인간에겐 한계가 없다. 그들은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P :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학살자와 희생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로맹 가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연민에 무감각한 냉소주의, 집단 이기주의였습니다. "당신은 아무 느낌도 없소?" 그는 만회를 시도하기도 하고, 정신적 혼란을 통제할 줄 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증명하려 이 책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독일인의 의식 속에서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었습니다. 이 책을 쓰고 그가 한 인터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P : 문화에 도취하다가 우리의 중대 범죄들이 흐려질까 두렵다. 이것이 영감의 원천 소재에 지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의 탐욕이 돈벌이 정신에 지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의 불행에서 이득을 취할까 봐 두렵다. 모두를 돕지 않고 몽상에 빠져 있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