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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30. 2023

걸리버 여행기

by 조너선 스위프트

어렸을 때 읽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감회가 새로운 책이 있습니다. 한 없이 아름답게만 보고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B612별을 찾으려 했던 <어린 왕자>가 그러했고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사람이 가질 수 있을지 궁금했던 <걸리버 여행기>가 그랬습니다. 한없이 창의적이고 재미로만 봤던 이 책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사실 엄청납니다.


1726년 10월 <멀리 떨어진 여러 나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런던에서 출간된 초판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초판은 한 달도 채 안 돼 매진되었고 기본적으로 여행기 형식의 글에 대한 수요가 탄탄하던 시대의 흐름에 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등장하는 지명은 모두 지어낸 것이지만 작품 속에서 걸리버가 표류하던 곳의 지리 정보 역시 현실적인 부분들도 상당히 섞여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자신들이 대양의 바닷길을 모두 장악했다고 생각하던 터라 낯선 세상 이야기야말로 팽창과 정복의 욕망을 적당히 달래주고 동시에 확대 재생산하기도 하는 마약 같은 존재였습니다.


책의 내용은 걸리버가 1699년 5월부터 1715년 12월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대양 항해에 나섰다가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기상천외한 나라 이야기를 다룹니다. 소인국과 거인국을 차례로 경험한 걸리버는 세 번째 항해에선 해적에 붙잡혔다 쫓겨난 뒤 베링해협 남쪽 북태평양을 떠돌다가 지름 72킬로미터 두께 270미터의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에 도착합니다. 마지막 항해는 해적인 선원들에게 쫓겨나 홀로 버려진 걸리버가 다다른 곳은 거짓말이란 개념조차 모르는 휴이넘들이 머리와 가슴이 털로 뒤덮인 타락하고 추한 야후들을 지배하는 말의 나라였습니다. 휴이넘의 매력에 푹 빠진 걸리버는 다시는 지저분한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겠다 마음먹었으나 결국 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족들이 기다리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걸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P : 이성에 따라서 행동하는 후이늠들은 그들이 소유한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팔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내가 이 주제에 관해서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의 야후에 불과한 나 자신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 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소망 때문이다.



이 책은 7년 앞서 출간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정면 디스 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작가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뢰하고 개인이 사회에 우선한다는 디포의 낙관론적 세계관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세 번째 항해에 걸리버를 끌어들여 결국 곤란에 빠뜨린 선장의 이름은 로빈슨이었습니다.


이 책의 진면목은 영국 사회를 난도질하듯 비판합니다. 스위프트가 인간 본성을 집요하리만치 조롱한 것도 결국 당대 영국의 정치 사회 질서를 정조준한 사회비판 성격의 포석입니다. 이 책은 정치적인 야망도 있었던 스위프트는 좌절감과 실망이 최고조에 이른 바로 이 시기에 쓰인 작품입니다. 영국의 수상 또는 총리를 대 놓고 디스 하는데 타락하고 추한 야후라고 설명하며 비난하는 책의 대목은 스위프트가 영국 사회에 얼마만큼 적대감을 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만든 인쇄업자는 구속되고 책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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