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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Nov 15. 2023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b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좋아하는 작가가 서평을 쓰면 보통 그 책을 읽습니다. 대부분은 공감하며 즐기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책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었습니다. 앙드레 지드가 이 책의 서평을 통해서 리비에르의 숭고함을 칭찬을 합니다. 이성과 정신의 강조를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온 그였기에, 냉혹하리만치 차갑고도 일관된 초인간적인 미덕을 가진 리비에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리비에르의 이야기뿐이라면 밤하늘에서 자신만의 차원과 세계를 회복하고, 고독하기 짝이 없는 조종사를 로망으로 결코 읽지 못했을 겁니다. 기차나 배보다 빠른 비행기를 통한 우편물의 배달과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여 보다 빠르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것이 경쟁이 붙었던 1930년대 초의 우편기 회사들은 조금이라도 경쟁회사보다 빠르게 배달하기 위해 과감히 야간비행을 시작합니다. 지금처럼 GPS 같은 장치 등이 없고 그저 눈과 추측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므로 굉장히 무모했고 또한 날이 흐리거나 폭풍이 오면 수없이 많은 우편기들이 행방불명이 되어 버리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우편기를 조정하는 파비앵과 그 항공사의 상사인 라비에르의 이야기입니다. 파비앵은 남극지방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의 우편 비행기를 조정하는 당사자이고 파비에르는 모든 우편기의 비행 감독, 계획을 짜는 팀장입니다. 야간 비행을 하던 당시 파비앵은 우편배달 조정사들을 각 공항 경유지에 잠깐 들렀다 출발하는 촉박하고 위험한 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수없이 많은 비행기의 도착과 출발, 날씨 등이 무선국으로 보내어지고, 비행기에는 조정사와 무선사가 같이 타고 위험한 비행을 하게 되는데 결국 악천후로 파비앵은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오지 못하고 행방불명이 되어 그의 부인이 매우 슬퍼하며 라비에르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라비에르는 다음 비행기의 이륙을 지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즈니스적인 면이나 인간적 정신력을 주제로 한 인문학의 세계에서라면 리비에르는 온전하고도 확고한 지휘자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단호하지만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걱정하지만 겉으로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 상관으로서 야간비행은 그저 뚫고 나가야 할 목표이자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게 의지의 순전이 힘으로 획득할 수 있는 자기 초월”이라는 지드의 서평은 속으로 누가 그런 걸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몇 줄의 풍광 묘사를 따뜻하게 기억합니다.



P : 벌써 황금빛 석양 속으로 구릉의 그림자가 짙어져 밭고랑을 지듯 펼쳐졌고 들판은 오래도록 스러지지 않을 빛으로 환하게 밝았다. 이 지방에서는 기울어가는 겨울에도 하얀 눈이 남아있듯 대지의 황금빛 저녁놀이 늦도록 불타올랐다



이런 서정적 정서를 기대하고 기억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같은 숭고한 의지보다는 파비앵과 베르니스의 고독한 비행, 프로펠러 뒤로 펄럭이듯 사라져 가는 마을과 항구와 산등성의 풍경들, 생을 정리하기도 부족한 황급한 순간들에서야 생각나버린 과거로부터 이어진 회한들, 결국 묵묵히 "하강함, 구름 속으로 들어감"을 무전을 치며 쓸쓸히 무전국 백지위에 유령 같은 글자들이 찍힐 때, 마음 가득히 안타까움을 묻고 조종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저를 느꼈습니다. 마치 “삶이란 풍경을 바라보고 음미하듯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슬쩍 비칠 때 리비에르의 존재감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P : 밤은 어두운 연기처럼 피어올라 계곡을 메우고, 벌써 불을 밝혀 별자리처럼 반짝임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조종사도 거기에 화답하듯 손가락을 튕겨 날개 등을 깜박인다. 이윽고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을 밝히듯 집들이 저마다 광대한 밤을 향해 자신의 별을 밝히자 대지는 반짝이는 호출 신호가 점점 박힌 듯 펼쳐지는 가운데,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결국 파비앵의 폭풍을 언젠가 우리도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에, 그의 입장에서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생의 마지막에서나 겪는 암흑 같은 절망을 안고 살았던 모습과 아무 일 없을 거라고 근거 없이 믿고 살았던 모습이 보여서 더 측은하게 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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