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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31. 2023

청소부 매뉴얼

by 루시아 벌린

2015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처음 보는 작가의 이름이 올라왔습니다. 유수의 언론들도 서로 질세라 이 소설에 일제히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2004년 68세의 나이로 고인이 되셨고 사후 11년 뒤에서야 새롭게 발견된 작가였고 당시 미국 출판계에 일약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현재 전 세계 31개국에서 번역되었습니다. 평생 무명이었던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사후에야 잃어버렸던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책을 읽고 그녀에 대해서 한전 찾아보게 되었는데 비트 세대 작가였고 주변 환경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기록했고 대부분의 남성 집단과 달리 자신의 절망적인 인생을 사실적인 이야기를 주로 써왔습니다.


저자의 작품에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남성의 명령에 따르는 여성 화자들이 등장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동시에 유머와 멜랑콜리를 자아냅니다. 놀라웠던 거는 그녀의 글 안에서 감정은 극한으로 가지만 언어는 꾸밈이 없고 문장은 단편적이면서도 글은 산뜻합니다. 최소한의 단어로 복잡한 감정과 사소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는 능력을 지녔고 인간애와 공간, 음식, 냄새, 색채, 언어 등의 억제할 수 없는 속성과 연결되어 작중의 사건이나 감정이 명랑한가 아닌가 하는 것과 상관없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표제작인 <청소부 매뉴얼> 은 “42-피드몬트, 잭 런던 광장행 완행버스, 청소부들과 할머니들, 나는 한 눈먼 할머니 옆에 앉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소설에는 실제 청소부로 일하던 벌린이 자신이 청소하는 집과 집주인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벌린은 그들이 남긴 흔적에서 그들의 삶을 보았고 타인의 일상과 버릇 및 취미와 수집품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청소부라는 직업이 일반적 인식과 달리 그 어느 직업보다 가장 내밀하고 자유로운 일처럼 보였습니다. 청소부들은 사실 물건을 훔친다는 통념이 있던 시절 그걸 깨부수며 쾌감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안에는 청소부뿐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갖가지 일을 전전하며 마주친 풍경들이 등장합니다. 청소부나 간호보조 등 직업적 부분뿐만 아니라 가난과 실업, 낙태와 알코올 중독 등 책에 실린 대부분은 벌린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였습니다. 벌린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이 글의 배경과 소재가 되는 탓에 소설은 산문과 픽션의 모호한 경계에 있습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말하기 위해서는 결국 작가의 삶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뒤늦게야 발견된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고 파란만장한 이력 또한 소설에 신화적 분위기를 덧씌우기도 했습니다.



P : 언젠가 그는 내가 샌 파블로 대로 같아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테리는 버클리 폐기장 같았다. 폐기장 가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뉴멕시코가 그리울 때 그곳에 갔었다. 삭막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갈매기들은 사막의 쏙독새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그곳에선 머리 위로, 사방으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쓰레기 트럭들은 천둥소리와 함께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다닌다. 회색 공룡들.



1936년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수시로 이사를 다녔고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학대와 방치를 받기도 하면서 칠레와 멕시코 같은 외국에도 살았습니다. 척추 옆 굽음증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장애로 평생을 시달렸었고 오랜 기간 심한 알코올 중독과 여러 불안정한 일자리를 거치며 세 번의 결혼 경험이 있었고 네 아이를 키운 싱글맘이기도 했습니다.


1971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버클리와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의 일을 하며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글을 에세이로 넣어야 할지 고민하다 여행이라는 항목으로 넣은 이유는 그녀가 이집 저집을 돌머 마치 산책하듯이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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