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cicle Dec 20. 2023

크리스마스에 영화를 보는 당신은...

연말이면 남편은 넷플릭스를 열심히 뒤지며 크리스마스 영화를 찾는다. 지극히 단순한 영화 취향을 가진 그는 해마다 비슷비슷한 스토리의 크리스마스 영화 보기를 즐겨하고 있다. 오래전 넷플릭스를 이용하지 않았을 때는 크리스마스 영화 DVD를 구매하곤 했었다. 우리 집 책장의 한 켠에는 남편이 사 모으던 영화들이 아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는 주로 싱글 남녀의 연애사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간간이 가족을 소재로 한 전통적인 영화도 나온다. 오랫동안 도시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쓸쓸한 연말을 보내야 할 순간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영화의 주된 골격이다. 어릴 때 헤어져 이제는 관계가 끊어진 엄마나 아빠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거나, 친척 할머니가 갑자기 죽어서 유산으로 받은 시골의 농장을 팔려고 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일어나는 심경의 변화라든가 등등… 결론은 늘 해피엔딩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누가 보아도 내용은 유치하지만, 눈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뒤덮인 장면만으로 모든 어색한 스토리를 무마시키는 영화들이 지겹지도 않은지, 남편은 이 계절이 되면 항상 비슷한 영화를 여러 편 골라본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산타를 믿지 않던 아이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경험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산타가 있다고 믿게 된다는, 역시 개연성은 전혀 없지만 동화 같은 영화를 같이 보곤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 열광하며 보던 크리스마스 영화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헐리우드에서 찍어내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가족의 연결을 강조하고 따뜻함을 갈망하는 것 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족을 중시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것일까?


나는 건조한 성격을 타고나서인지 ‘행복’이라는 감정은 순간일 뿐이고 근본적으로 지루하게 전개되는 일상의 연결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편의 영화 취향과는 반대로 나는 SF영화를 열심히 본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지구의 미래를 상상해 보여주는 SF영화들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지구의 미래를 극단적으로 암울하게 그리기를 좋아할까? 사람들은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가정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지구의 미래가 이토록 암담한데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예수님 생일이라는데 왜 지들이 선물을 주고받냐고…“


영화의 첫 장면에서 대개 주인공들은 외롭다. 그들은 주로 혼자 살며 연인이 있는 사람이라도 어린 시절의 결핍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 속에서 바쁜 직장인으로,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혼자가 되면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다시 쓸쓸함을 느낀다. 현실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싱글로 살아가는 나의 친구도 영화 속 주인공의 삶과 비슷하다.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다리는 떠들썩함도 없고 사람들은 결혼하기를 주저한다. 아이가 있는 가족을 만드는 일은 이제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휴일이라 보기 어렵다. 12월이 오면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던 우리 집도 올해 겨울은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트리를 세우지 않았다. 아이가 다 커버린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일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크리스마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30년도 전에 집 나간 아버지를 다시 만나 트리를 장식하며 화해의 기적을 만들고, 할머니의 농장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크리스마스 전통을 지키는 장소로서 동네 사람들에게 희망을 남기고, 아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영화 속 스토리와 결말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현실은 큰 변화 없는 쓸쓸함이 지속될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라도 가족의 화해를 보며 따뜻함을 그리워하고 산타를 믿는 아이의 순수함을 보며 대리만족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판타지 같은 영화의 내용은 현실 세계와는 달라서, 그래서 현실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며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힐링을 얻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어쩌면 현실의 자기는 이렇게 메말랐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맞던 과거의 자신이 그리운 것일 수 있다. 또한 꼬맹이였던 아들과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즐거웠을 젊었던 한때가 생각나는 것일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호선 지하철에서 생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