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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Jan 16. 2024

'자카란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사진을 찾았다. 그 때는 스마트폰도 없고 최신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화질은 이 정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답고 오래된 동네에 살았었다. 이 동네 주택가의 가로수는 이렇게 신비로운 색을 가진 오래된 나무가 도로의 양 옆으로 늘어서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다. 그 동네에 3년을 살면서도 꽃이름을 알지 못했다. 어느 해인가 아들과 같은반 친구였던 아이린(Irene) 엄마에게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만 그 동네에 오래 살았던 그녀도 이름을 몰랐다.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진동하는 길을 매일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왔다. 


나는 그 무렵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학기엔가 수업이 2시 50분에 끝나는 때가 있었다. 아이는 2시 45분에 학교를 마치므로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 주일에 두 번은 하교하는 아이의 픽업시간에 맞추지 못해 아이에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간다고 항상 말을 해 두어야만 했다. 2시 45분이 끝나는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고 학교 밖에서는 엄마들이 기다리다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 시간이 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이 15분 정도였으니 나는 수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주차장으로 뛰어 난폭하게 운전을 하며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을 반복했다. 


매번 운이 좋을 수는 없어서 어느 날은 내가 늦었다.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학교 입구에 입을 삐죽거리며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혼자 서있는 아들을 발견하는 날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자기를 가장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한없이 서운한 법이다. '미안, 아들'


이제는 그런 날조차도 그리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20년이 가까와오는 지금까지 보라색 꽃이 피는 나무 이름을 모르다 얼마전 검색을 통해 드디어 알게 되었다. '자카란다.' 주로 남미와 포르투갈 같은 지역의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나무라고 한다. 그 때 살았던 동네는 한 두달을 제외하고 늘 더운 동네이니 이 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가끔 5월이 되면 보라색 꽃으로 덮인 예쁜 동네를 떠올린다. 엘에이는 한국에서 멀지도 않은데 불쑥 꽃구경하러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제주도가 지금처럼 붐비지 않았을 때, 나는 가끔 친구에게 '점심에 제주에 가서 보말국수 먹고 저녁에 돌아올까?' 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때의 친구는 어이없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제안을 하면 분명히 좋다고 따라나설 것 같다. 


그런데, 봄에 꽃구경하러 엘에이 가자고 하면 친구는 또 어이없어할까? 


그곳에서 서른 일곱 살의 나를 꽃과 함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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