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태아를 떨어트린다는 말이다. 의료계에서는 인공임신중절, 임신 중절 수술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는 '낙태'이다. 임신을 하는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여성인데, 그것을 중단할 때 여성이라는 주체는 사라진다. 그리고 오로지 불쌍한 생명인 '태아'만 남는다. 용어 자체에 태아라는 생명을 죽인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는 낙태를 선택한 여성에게 생명을 훼손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우리 사회가 가진 '인공임신중절(낙태)'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흔히 2물결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2기 페미니즘 운동은 백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 운동의 성격과 의제가 결정 되었다. 인공임신중절(낙태)에 대한 논의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여성들도 추구할 수 있다, 여성도 원할 때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성해방' 담론에서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섹스에 동반되는 원치 않는 임신과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부상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이를 통제할 것인가? 실질적으로 여성들이 임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임신 중절 보다는 임신 선택, 즉 피임인데, 이 시기에는 임신 중절이 더욱 부각 되었다. 당시 운동을 주도하던 계급이 중산층 백인 여성이었다는 점(부유한 백인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 중절 시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음)과 임신 중절이 기독교 근본주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되면서 언론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여성의 몸을 임신으로부터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마치 인공 임신 중절(낙태)인 것처럼 과장 되었고, 급진적인 2물결 페미니즘 운동이 사그라 들면서 인공임신중절(낙태)은 강한 백래시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벨 훅스, 2015)
임신 선택과 임신 중단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해방하자는 것이 시작이었지만, 이것이 인공임신중절(낙태)을 법으로 허용할지, 말지에 대한 논란으로 변질되면서 그 목적을 잃어버렸다. 여성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 할 수 있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인데(성적 자기 결정권), 이 문제는 한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오로지 낙태를 처벌 할지 말지만이 도마에 올랐다. 국가는 인구 정책에 따라 입맛대로 임신 중절을 합법화 했다가, 불법화 했다가 정책을 바꾸었다.
한국에서는 2019년 헌재에서 형법 296조와 297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헌재 결정에서 단순 위헌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이라는 방식을 고수할 경우 임신한 여성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임신의 유지 여부에 관하여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을 단 한 번도 보장받지 못한다. 이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그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이라며, 임신 중절 문제가 갖는 핵심을 관통했다.
이미 시민의 권리를 인정 받은 여성과 잠재적 시민인 태아 사이에서 누구의 기본권이 더 중요하다고 저울질하는 것은 소모적이며 이 문제의 본질을 지운다. 인공임신중절(낙태)의 본질은 여성들이 지난한 논쟁의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임신 중절 문제의 주체가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나아가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황당한 일이다. 또한 임신에 책임이 있는 아버지는 이 법에서 교묘하게 처벌을 비켜가면서 내가 통제하지 못한 양육까지도 오롯이 여성의 책임이 되고 말았다.
어떤 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태아의 생명권을 위한 수단이라고 이야기 한다. 태아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에만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용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길성환, 2020). 그러나 그 진영에서 내세우는 생명존중과 천부인권의 시각으로 보아도 누군가의 기본권이 다른이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 시민이 아닌 가톨릭 신자의 시각으로 보아도 왜 저런 말씀을 하셨는지 의아하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심지어 죄를 지을지 말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선택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왜 임신, 출산에 있어서는 하느님이 주신 '자유 의지'를 발휘할 수 없게끔 교회가 막는 것일까? 왜 여성의 결정보다 태아의 생명이 우선한다고 교회가 판단하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교회에서 교회법으로 낙태를 계속해서 금지하는 것을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불법으로 처벌한다고 가정해 보자. 교회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교회가 더 이상 법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혼동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 한국은 교회의 나라가 아니고 헌법에 의해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대표가 국민을 대신하여 법을 만들고, 수행하는 민주공화국이자 법치국가이다. 법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법은 헌법이다. 헌법의 기본권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임신을 중단할 수 있다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이제 막 담론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근대 법학에서 '비범죄화'는 이론적(과학적으로 증명된 타당하고, 합리적인 명제) 근거에 따라 결정된다. 단순히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니까 이건 국가가 처벌해야한다.'라는 인식만으로는 인공임신중절(낙태)을 형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근거가 희박하다. 또한 범죄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도 국가는 해당 처벌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처벌 과정이 범죄 사실에 비추어 적절한지에 따라 결정한다. 한때 미국에서는 노예를 죽이는 것이 합법이었으며,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여성이 가문에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여겨지면 합법적으로 그 여성을 죽일 수 있다(이소영 외, 2018). 과연 인공임신중절(낙태)는 이론적으로 생명을 죽인다고 볼 수 있는가? 인공임신중절(낙태)를 처벌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저히 줄어드는가? 이제는 윤리, 도덕의 영역과 법의 영역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헌법의 모든 기본권이 그러하듯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자기 결정이 생명권을 가진 존재인 태아의 기본권을 '법적으로' 침해하는가에 대한 영역은 과학으로 밝혀내고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세포도 생명이며, 이를 의료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살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주장에 불과하다. 그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국가더러 개입해 달라고 하는 것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존재 방식에 제동을 거는 것과 다름 없다. 거기다 그것을 위해 신자들까지 동원하다니 도대체 우리를 뭐로 생각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대변하기 위한 거수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인지?
뿐만 아니라 난 신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분명히 성당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배웠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면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교회는 여성의 자유의지를 빼앗고 여성이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뉘우칠 권리도 빼앗는지 모르겠다(인공임신중절(낙태)이 불법이이라서 회개하고 뉘우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뉘우칠 권리가 있다는 뜻에서). 여성을 신자가 아니고, 교회의 새 신자를 만들어 내는 '공장'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 지금은 2020년인데 교회의 인식은 수천년 전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주교라는 타이틀을 달고 형법 296조, 297조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올 때 정말 천주교 신자인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 신자인 나는 그렇게 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 왜 신부님들이 내 입장까지 대변해 주시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성경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운영되니까 하느님의 대리인인 우리 말을 그냥 따르라고 한다면 유대 율법과 현대 교회법의 다름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법을 그렇게 정 바꾸고 싶으시다면 신부님들이 직접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스님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신부님들이라고 못하실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내가 성직자라서 출마는 못한다고 하시면 인공임신중절(낙태)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 후원금'을 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법인으로는 못하니까 개인이 하셔야 된다. 많이 기부하시고, 보도자료 내시면 된다. 한두분만 하셔도 충분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부 러시로 인해 갑자기 인공임신중절(낙태) 반대가 대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난치지 말라고? 이게 현대의 법치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고대 제정일치 사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임신 중단에 대한 여성의 권리, 특히 자기 결정권을 보장해 달라는 우리의 '헌법적 기본권 논쟁'에서 이제 '교회'는 제발 낄끼빠빠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만약 이 글 때문에 내가 바이든처럼 성체를 영하지 못하게 된다면.... 받아들이겠다! 그것이 '신자' 이니까!
*참고문헌*
벨 훅스,『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2015,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문학동네
이소영 외,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2018,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길성환, "사실상의 낙태 합법화에 반대한다.", 2020.10.25., 천주교 전주교구 주보 숲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