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는 교회
오늘은 부활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기독교인들은 40일간의 사순 기간을 통해 우리의 죄를 묵상하고, 부활절에는 이런 죄에서 용서 받고 새로 태어나는 것을 서로 축하한다.
나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요즘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질문이다. 확실한건 이제 더 이상 성당에 가기는 싫다는 것이다. 바티칸은 동성간의 결혼식에 축복을 해 주는 것을 불허하기로 발표했다. 교황이 꾸준히 성소수자를 교회 안으로 적극적으로 포용하자는 입장을 발표해 왔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요즘 성당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이젠 교회의 존재 이유는 그저 제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을 기억하려면 매주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라고 하면서, 정작 교회야말로 예수님을 잊어버린 것 같다.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 부분은 빼야 한다 주장하고, 다양한 가족과 결혼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며, 무조건 지정성별 여성과 남성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만 '성가정'이라고 고집한다. 재생산권 논의까진 가지도 못했다. 아직도 시험관 아기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덤이다. 세상은 변했는데 자기들만의 교리를 율법처럼 떠받드는 사이비 집단 같다.
그나마도 개신교보다는 나은 것 같다. 적어도 개신교처럼 신자들에게 세뇌시키는 짓은 안하니까. 개신교는 대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데도 당당하다. HIV 환자들에 대해 개신교 매체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나, 성소수자에 대한 개신교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여긴 사이비 집단을 넘어 범죄자 소굴 같다. 그나마 개신교에는 여기에 반대하는 대안적인 목회자들도 많다는 것이 희망이다. 물론 이들은 교단에서 너무 소수여서 당연히 탄압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이단으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 누가 바리사이고 누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지 헷갈린다.
성경에 동성간의 성관계를 금기시하는 구절은 여러번 등장한다. 하지만 20세기까지도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적 지향은 정신병으로 여겨졌으며,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는 이를 이유로 수용소나 감옥에 끌려가 교정이란 목적으로 고문을 당하다 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소수자를 탄합해 온 역사가 그만큼 유구한 것이고, 성경에서 이를 금기시 하는 것도 그런 역사의 산물일 뿐이지 정말로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그 모든 율법보다도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교회가 느리고, 보수적이 수 밖에 없으니 신자들이 이해해 달라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왜 교회가 느리고 보수적일까? 남성 신부들 밖에 없으니까.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진보적인 사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백날 성체 모시고 미사 참례 한다고 해도, 정작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부분에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밑천을 드러내고 있으니 답답하다. 교회의 영향인지, 그냥 보수적인건지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도 '동성애는 좀...' 이라거나 '그래도 애기는 부모가 다 있어야 행복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가정 폭력의 90퍼센트 이상이 남성 가장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그러나 여전히 안타까운 얘기를 들으면, '기도해 드릴게요'가 먼저 튀어나오려고 한다. 이젠 이런 말도 그 사람을 돕고 싶지만 물리적으로는 도울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자기 위안일 뿐이라는 허탈한 생각이 든다. 성당에 나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 상기하는 것도 그냥 내 만족일 뿐이다. 그래서 올해는 정말이지 부활을 축하한다는 말이 너무나 공허하다. 세상엔 아무런 희망이 없고,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만 포용하는 교회 안에서 무엇이 부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의 발언 때문에 교회 내의 소수자 신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해야 하고 시험 받아야 하는데 매년 그 놈의 거룩한 전례만 반복하면 저절로 교회는 부활 되는 것인지?
하느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 나는 살아서 이것들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삶이다. 그게 궁극적인 구원인 것이지, 백날 미사 열심히 참여 하면서 사랑하자는 강론만 열심히 듣는다고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어제 부활절을 기념해서 유튜브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공연 실황을 라이브로 중계해 주었는데, 유다가 부르던 노래가 마음에 남는다. 살아서 우리를 돌봐야지, 왜 그는 죽으려고 하는가. 그게 길이라고 생각하셨겠지. 도망자 신분으로 공생활을 지속할 수록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이들에 대한 탄압은 심해졌을테니까. 자신이 우리들을 대신해서 희생하면, 더 이상 자신을 따르는 이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 하셨겠지. 어쨌든 그렇게 돌아가셨어도, 부활로서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셨는데, 여전히 희망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뿐이네. 사회가 정한 '정상성'이라는 율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요한 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