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부모님들 중 누구도 체구가 이렇게 작은 사람이 없는데 나는 체구가 무척 작은 편이다. 특히 흉통이 매우 작다. 어렸을 땐 엄마를 닮은 줄 알았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할머니를 닮은 것이었다. 이제와서 라고 한 이유는 이제 할머니가 더 이상 이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 입관 예식에 참석했다. 누워 있는 할머니 모습은 그냥 잠이 든 사람 같았다. 일어나세요, 하고 깨우면 금새 눈을 뜨실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이 그토록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돌아가신 할머니의 시신을 보며 깨달았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성서모임 연수 봉사를 들어가기 이틀 전이었다. 당시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안된다는 생각보다 내가 연수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고 제발 연수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할머니는 연수가 끝난 화요일에 돌아가셨다. 오늘이 그 날일거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날이었다. 어떤 죽음도 준비할 수는 없구나. 임종 소식을 듣고 집에 가는 길 마음을 다스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사실 할머니에게 애틋한 감정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는 내게 악다구니 쓰고 엄마를 괴롭히는 시어머니,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부모님보다 많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겁이 나서 밤에 울었던 적도 있다. 할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한 건 엄마가 점점 할머니를 부양하기 힘들어 하면서 부터 일 것 이다. 할머니와 떨어져 있던 것보다 함께 했던 시간이 훨씬 긴데도 나는 마치 처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적이 없는 사람처럼 할머니를 마음 속에서 몰아냈다. 좋은 기억 보단 할머니에 대한 나쁜 기억만 더 선명하게 되새기려고 했다. 할머니에게 받은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가 진행될 수록 건강하고 내게 뭐라고 혼을 내던 할머니가 아닌 병상에 누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만 점점 더 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모습. 이가 다 빠진채 거동조차 하시지 못하던 그 순간이 말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고, 슬펐다. 잘 가시라는 말이 목이 매어 잘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와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할머니를 관에 모시던 그 순간엔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밝은 빛에서 어둠의 세계로, 살아있는 사람이 모르는 곳으로, 캄캄한 관 속에 모셔진 할머니는 그런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인날. 할머니의 육신은 불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는 그 광경을 가족들이 끝까지 지켜보게 했다는데, 최근에는 별도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으로 바뀐 것 같았다. 만약 지켜봐야 했다면 무척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작은 나무 밑둥에 재가 된 할머니를 모셨다. 첫날 조문을 와 주신 신부님이 죽음도 삶 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라 하셨는데 처음에 그 말을 들을 땐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그 말이 무슨말이었을까 음미했다. 아마도 신부님의 말처럼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건 죽음이야말로 숨막히는 삶을 벗어나 원래의 모습이었던 먼지로 돌아가는무한한 자유를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흙이었다가 다시 비가 되었다가, 바람이 되었다가 우리의 영혼을 가둔 신체를 벗어나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마침내 육신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