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여성 ㄱ씨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선언에 부쳐
트랜스젠더 여성인 ㄱ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며칠동안 개인에게 쏟아졌던 포화, 그리고 학우들의 반대 서명운동은 한 개인이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공포가 혐오로 흐르는 모습을 그동안 너무 자주 봐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목격 되는 말이 바로 ‘잠재적 가해자’ 라는 말이다. 이번엔 트랜스젠더 여성이 바로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 되었다.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려는 남성이 자신을 여성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체성을 속일 것이고, 이것이 여성들에게 큰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논란에 불을 지피기라도 하듯, 한 남성이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고 여탕에 무단 침입하여 경찰이 출동한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은 남성이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 하고 있다는 발언을 대서특필 했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MTF 트랜스젠더 학생이 5세 아동을 여자화장실에서 강제추행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017년부터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에 따라 화장실을 이용토록하는 행정부의 권고가 폐지되면서 각 주마다 ‘화장실법’ 논란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생물학적 성별로만 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여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양상은 정 반대이다. 많은 통계들은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허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언론을 통해 조명되는 작은 단편들에 집착하며, 이것이 전체인양 몰아간다. 이런 모습은 일제강점기 ‘관동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정부는 지진의 공포에 동요하는 시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일본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다는 루머를 퍼트렸다.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조선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수많은 재일 조선인들이 희생당했다.
공포는 억압을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다. 더 이상 실체없는 공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공포가 혐오의 수단으로 이용 당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여성들이 서로 ‘여성성’을 통제하고 검열할수록, 이것에 환호하며 즐기는 것은 누구인가? 가부장제 권력이다. ‘여성성’의 의미가 점점 좁아질수록 소수자로서 ‘여성’의 입지 역시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무자비한 혐오의 도구로 페미니즘이 이용당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