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업무 지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이것저것 참견하는 것도 너무 열받지만, 더 짜증나는 건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모호한 업무지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ex-팀장은 모호한 업무지시의 끝판왕 같은 놈이었다. 기억이 미화돼서 그새끼에 대한 악감정을 까먹기 전에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나는 말도 안되는 업무 지시로 1년간을 고통 받았다. 전임자, 전전임자는 아무 일 없었는데, 넌 왜 그래? 동네 사람들. 이거 제가 이상한거에요?
매일 자신을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줬어야 했나? 그는 매일 아침마다 '동향보고'를 듣길 원했다. 무슨 무슨 사이트에 매일 뭐 올라온게 있나 체크를 해서 있으면 그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해야하는 식이었다. 그것도 거기 올라온 자료들을 가독성도 떨어지는데 다 출력해서 갖다 줬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뽑아 갔다. 그랬더니 내용을 어느정도 숙지를 하고 자기한테 알려달라고 해서 그 다음부턴 내용을 꼼꼼히 봤다. 그래서 외운대로 말해주는데, 아니 일단 여기부터 이상한거지. 무슨 시험 공부도 아니고. 외워서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하래서 했는데 말은 다 듣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자세히 볼 필요는 없단다. 이 놈이?
지금 와서 전임자들과 나를 비교해보니 내가 뭐가 잘못됐었는지 알았다. 그는 그냥 본부장 놀이, 임원 놀이를 하고 싶었던건데 내가 장단을 안 맞춰주니까 화가 났었던 것 같다. 동향보고라고 하지만, 그냥 아침에 보고 같은 걸 받으면서 이바구나 좀 털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동향을 나보고 조사하라고 하고, 지는 맨날 유튜브 보고, 주식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안나요? 그리고 내가 기껏 뽑아준 동향자료(...)들을 메모지로 쓰고 있는데 화가 나요 안 나요? 결국 동향보고 중요한 것도 아니었던 거잖아. 이런 개쉽싸리... 아침마다 한 사람을 그렇게 죄인처럼 세워 놓고, 눈치보게 하고 그렇게 했어야만 했냐!
그런 황당한 동향 보고의 끝판왕은, 경쟁사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자료들을, 거기 가입한 회원들만 볼 수 있는걸 일부러 아이디까지 어디서 훔쳐가지고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디만 있으면 기업 경영정보까지 열람이 가능했는데, 어디서 아이디를 훔쳐와서는 그거를 가지고 거기 이사회에서 무슨 얘기 했는지 그런걸 보고 업데이트 되는 걸 계속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경쟁업체에서 몇번 뒤통수를 쳐서 그것때문에 회사에 몇번 일이 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시를? 그것도 꾸준히 해서 지한테 보고 하라고? 국정원이냐?
거기다 더 황당한건, A 업체에서는 매주 자기들이 만드는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메일링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A업체 자료를 받아서 갖다 주는 업무였다. A 입장에서 경쟁업체인 우리 회사로 받기가 좀 그렇다는 거다. 아니 왜? 받을 수도 있지.. 그건 심지어 아이디 패스워드 훔쳐서 구독하는 대외비 자료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신청하고 돈 내면 다 보내주는 자료였다. 근데 그걸 우리회사 주소로 받으면 산업스파이짓 하는거 같다고, 굳이 직원인 내 개인주소로 받아서 그걸 그 인간한테 다시 갖다주는 업무를 나보고 하라고 했다. 무슨 내가 두 업체 사이의 비둘기도 아니고.. 차라리 지네 집 주소로 받던가요. 왜 내 개인 주소로 받아서 지한테 갖다주는 일을 해야 돼. 난 보지도 않는데.
전서구와 종이낭비 업무를 그 뒤로도 계속했는데, 내가 지 맘에 안 들게 하니까 인사팀에 패악을 부려서 다른팀 직원을 받은 후에 그 사람을 시켰다. 내가 느끼기엔 그 사람이나 나나 별로 퀄리티의 차이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새끼는 그 분과 나를 눈에 띄게 차별 했다. 그 분하고는 입만 잘 털면서, 나한테는 뭐라고 하고 이런거 출력만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냐고 면박을 주었었다. 너 말 잘했다. 야 출력만 하면 되는데, 그럼 니 손으로 니가 직접하라고 개쉽싸리 같은 놈아!
진짜 저 놈이 어느정도냐면, 내가 맘에 안 든다고 지 혼자 나를 내보내려고 시나리오 짠 다음에 나를 불러서 "다정씨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타령하고, 그러고 나서 결국 날 내보내는데는 실패하니까 은근히 부서 사람들과 분위기 조성해서 나를 따돌리고 나한테 나중에는 아예 아무일도 시키지 않았다. 기존에 하던 일들도 다 뺏어서 새로 충원된 사람에게 주고, 내 내선 전화번호도 다른 직원에게 주고, 나한테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하는 일을 시켰다. 내가 동영상 편집 해본 적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에 전혀 몰랐다면 진짜로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샜을 것 같다.
더 짜증나는건 그런 짓들이 법적으로 아무 처벌도 안된다는 것이다. 저런 똥같은 일만 계속 시키는데도 그게 합당한 업무 지시에 속한단다. 그는 지독한 수동공격형이라서, 절대로 내가 개선해야 될 점은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자기 심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비록 어딘가 이상한 업무지시일 지 언정 자기 맘에 안 들게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수정 사항이나 요청 사항을 얘기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회사의 업무 시스템이다. 이 새끼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지 심기를 거스르고, 뭔가 지 맘에 안 드니까 사무실 분위기가 싸해질 정도로 나한테 뭐라고 하고, 면박을 주었다. 요즘은 자기 맘에 쏙 드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지 잠잠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진짜 퇴사 안하고 아직까지 이 회사 다니는 내가 레전드다,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