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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Apr 29. 2024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이네

_남성 창극 <살로메>를 보고서

왜 이제야 만났을까 

술에도 저마다 어울리는 잔이 있다. 소주는 투명한 유리로 된 소주잔끼리 부딪치며 먹어야 제 맛이며, 막걸리는 한쪽 구석이 찌그러진 양은 막걸리잔에 마셔야 제 맛이다. 심지어 와인이나 맥주는 화이트인가 레드인가, 혹은 라거냐 에일이냐 등 종류애 따라 잔의 형태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사실 어느 잔에 따라 마셔도 술은 술이다. 좋은 술은 일회용 종이컵에 따라 마셔도 여전히 좋은 술이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도 매한가지고. 다만, 술이 품고 있는 풍미를 제대로 담아내는 잔에 따라 마신다면 좋은 술을 더 풍부하게, 더 맛깔나게 즐길 수 있다.      


1891년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으로 처음 선을 보인 <살로메>는 인간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호위대장과 양아버지를 단숨에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공주 살로메는 사도 요한의 애정을 갈구하다 외면당한 뒤, 일곱 베일의 춤의 대가로 그의 목을 요구하고, 죽은 사도 요한의 머리에 입을 맞추며 처절하게 욕망을 드러내다 끝끝내 최후를 맞이한다.     


남성 창극 <살로메>는 질척이는 욕망이 날 것 그대로 펄떡이는 살로메의 이야기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애끊는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우리 소리로 그려낸다. 그동안 <살로메>는 연극부터 오페라, 영화, 발레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지만, 창극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품 특유의 탐미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마치 딱 맞는 술잔에 담긴 술처럼.     


살로메에게 빠져버린 호위대장 나라보스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절하게 부르짖다가 결국 나라보스의 시체 앞에서 처연하게 흐느끼는 메나드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만큼 피를 토하는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죽은 형의 망령에 시달리며 점차 미쳐가는 헤로데왕의 광기 역시 마찬가지.           



흐릿해진 경계혼재될수록 매력적인    

창극이라고는 하지만, 극을 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그리스 연극 같기도 하고, 때로는 뮤지컬 같기도 하다. 그만큼 남성 창극 <살로메>는 장르의 경계도 수시로 넘나 든다. 이는 배우 캐스팅에서도 드러나는데, 국립 창극단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김준수 배우와 유태평양 배우가 각각 살로메와 헤로데왕을 맡아 든든하게 무대를 받치고,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도완 배우가 사도 요한을 맡아 동굴같이 깊은 목소리로 신비로움과 긴장감을 더한다. 뮤지컬 전공자가 3명이 포함된 5명의 코러스는 힘찬 군무와 합창으로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꾸며 준다.     


음악도 전통 판소리의 발성으로 흐느끼는 소리와 우리 선율에 얹어진 아쟁과 피리, 가야금의 소리가 창극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극을 이끌어 가면서도, 첼로와 피아노 등을 활용하여 서양음악에 익숙해진 우리 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소리와 리듬을 섞어낸다. 사도 요한이 등장할 때는 성가곡을 연상시키는 노래와 선율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시에,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혼재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경계를 넘을 때의 짜릿함은 성역할의 경계를 뛰어넘는 순간에 더욱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남성 창극 <살로메>라는 제목 그대로, 극 중 여성인 살로메나 헤로디아 역할을 남자 배우들이 맡아 열연을 펼친다. 연출자도 인터뷰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 없이 살로메나 헤로디아라는 인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의도대로 배우들은 여성 역할을 잘 해내는 남자 배우가 아닌 한 사람의 등장인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번에 보았던 공연에서는 더블 캐스팅된 윤제원 배우가 살로메를 맡았는데,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10대의 새침하면서도 앙칼진 매력과 집요한 소유욕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헤로디아 역을 맡은 서의철 배우의 농익은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는데, 비난과 자조가 섞인 ‘하, 하, 하!’ 비웃음소리가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돌 정도.


여자 배우가 맡았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등장인물의 관능미와 완숙미를 남자 배우들이 선보임으로써, 경계와 금기를 넘어서는 전복의 쾌감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남성 창극이라는 형식은 해당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탐미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는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성역할뿐만 아니라, 사랑의 경계도 훌쩍 넘나 든다. 원작의 시녀를 시종으로 바꾸면서 새롭게 추가된 시종 메나드와 호위대장 나라보스의 우정을 넘어선 관계는 비극적인 극의 흐름을 더욱 풍성하게 이끈다. 나라보스 역을 맡은 정보권 배우의 담담하면서도 비통한 소리와 메나드 역의 김수인 배우가 절절하게 내뱉는 소리는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불편한 의구심이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그저 서로 사랑을 하다 엇갈린 두 사람으로 보이게 할 뿐.           



결국 AI시대에 살아남는 건   

남성 창극 <살로메>는 인물 한 명 한 명에 깊이 감정이입하며 보는 무대라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광기와 소유욕을 온몸으로 쏟아내는 배우들의 절창과 열연을 감상하는 재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나아만의 대사처럼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보는 내내 떨칠 수 없다. 그 지점이 바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고.      


100분간 쉼 없이 몰아친 난장이 끝나고 커튼콜마저도 끝났지만, 공연의 여운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좀 더 작품과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카페에 앉아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고,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작품을 곱씹어보고, 되짚었다.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는 내내 내려올 줄 모르는 입꼬리가 살짝 당겼다. 이 맛에 사람들이 덕질을 하나보나 싶었다.      


후기를 찬찬히 살펴보다, 일곱 베일의 춤이 초연보다 더욱 격해졌다는 걸 알게 됐다. 과연 초연은 어땠었는지 궁금증이 확 일었다. 김준수가 김준수했다는 후기에 공연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진다는 김준수 배우의 살로메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이 깊어졌다. 


사람과 일자리를 무서운 속도로 대체하고, 순식간에 복제하고 생성하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건 인간이 하는 라이브뿐이라는 예측은 역시나 정확했다.     


멀리서 보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것이 하나 없다. 이게 바로 공연예술의 매력이구나 싶다. 같은 제목, 같은 내용, 같은 배우가 나오는 공연이라 하더라도, 기계가 아닌 인간이 하기에 완벽한 재현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며 N차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의 심정에 깊이 공감됐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발생하는 희소성까지 더해지면 더욱 더 갈증이 일어날 수밖에.      


인터뷰 기사에서 김준수 배우가 앞으로 5년 안에 창극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거라 확신한다고 말한 내용을 보았다. 이번 공연과 같은 다양한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추가적으로 사람들의 음악 재생목록에 포함될 만한 인상적인 음악 넘버들이 나온다면,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능력과 매력과 끼가 넘치는 배우와 제작진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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