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영화 <드림 시나리오>를 보고서 (1)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동요 속 가사처럼 방송국 카메라에 한 번 잡히는 것이 소원인 시절도 있었다. 날씨나 화제의 현장을 생중계하는 하는 카메라 뒤에서 어떻게든지 얼굴 한 번 비추려고 이리저리 밀치고 고개를 내밀던 아이들이 항상 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텔레비전 대신 스마트폰 화면만을 바라본다.
당시 지상파 방송국들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매체였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유튜브와 SNS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가와 PD의 선택을 받은 연예인과 일부 일반인이 뜨는 시대는 저물고, 크리에이터, 스트리머,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얼굴을 알리는 시대가 열렸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이 된다. 연예인이나 국회의원과 같이 대중의 선택을 받아 인기와 권력을 누리는 직업일수록 인지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도 그랬다. 정치인들은 부고장만 빼고는 어떤 기사든 일단 신문에 실리는 게 기사가 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걸 싫어한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일일이 따지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생각과 판단에 드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길 원하는 뇌의 성향과 생존을 위해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과 아는 것에 대한 편안함이 새겨진 유전자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 안에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해야 할 때, 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휴리스틱에 따라 움직이곤 한다. 휴리스틱은 체계적이면서 합리적인 판단이 굳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용성 휴리스틱은 기억 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대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얼굴을 아는 친숙한 사람의 말은 옳다는 편향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얼굴을 아는 인플루언서가 말했으니 믿을만할 거라는 휴리스틱에 따른 인지적 편향과 인플루언서가 증명했으니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란 안심, 그리고 인플루언서처럼 될 수 있을 거란 희망 섞인 믿음이 뒤섞여,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제품들을 사고, 그들이 가는 곳을 따라간다. 요새 자주 언급되는 디토소비가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예전에는 연예인을 광고모델을 내세워 인지도와 유명세의 후광효과를 누렸다면, 이제는 일정 숫자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유명세를 적극 활용한다. 팔로워수로 확인되는 인지도를 기반으로 인플루언서들은 확실한 홍보효과를 장담하며 예상보다 훨씬 큰 금액을 요구한다. 최근에는 몸값이 너무 오르다 보니, 수만,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한 메가 인플루언서보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선호하는 경향까지 생길 정도라고 한다.
유명세가 곧 돈인 세상에서, 방송국 대신 유튜브에 누구나 동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되면서, 유명세를 얻기 위한 진입장벽이 낮아진 지금, 유튜브에는 소위 어그로라도 끌어서라도 주목받으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유튜브 업로드 버튼을 누르며, 간절히 빌어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떡상하게 하옵소서, 신비로운 알고리즘을 타고, 실버, 골드 버튼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영화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의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평범하다 못해 지질한 중년의 교수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은근히 즐기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대놓고 사람들의 관심을 만끽한다. 아닌 척하면서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관종 연기는 저절로 입술이 들썩거리며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그저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홍보대행사가 달라붙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과의 콜라보,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만남 등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제안을 해댄다. 하지만 소심한 중년의 교수가 바라는 건 이름값에 밀려 출간되지 못한 자신의 논문이 책으로 나오는 것뿐.
당연히 그런 시시한 욕망에는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다들 자신의 꿈에 나온 그의 이미지대로 그를 이리저리 재단하고 판단한다. 심지어 홍보대행업체에서 만난 젊은 여직원은 자신의 꿈속에 나온 대로 자신을 거칠게 덮쳐달라고 요구한다. 유혹에 넘어간 그는 장단을 맞춰주려고 애써 보지만, 섹시한 중년남은 꿈속의 허상일 뿐 현실 속 그는 생리적 현상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몸뚱이를 가진 초라한 중년임을 잔인하게 확인받는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유명세를 얻을수록,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인식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처음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고 하지만, 유명세의 무게를 이길 충분한 준비라는 건 처음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조회수가 터지는 소위 떡상을 간절히 기원하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다. 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설정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요, 쉴 새 없이 아래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엄지손가락을 붙들기 위한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 만들기는 필수다.
매일 바뀌는 유튜브 추천리스트를 보며,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영상들이 올라오는지 궁금해졌다. 하루에 올라오는 유튜브 영상은 몇 개나 되니. 구글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역시 10초도 되지 않아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2023년에 1분당 500시간의 영상이 업로드되었으니, 1초당 약 83개의 동영상이 업로드되는 셈이다.
수많은 영상 사이에서 주목을 끌기 위해서 요새 유행한다는 챌린지란 챌린지는 다 따라도 해보기도 하고,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 중에는 얼굴을 알리고 인지도를 얻기 위해, 각종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사는 건 네가 결정하지만, 파는 건 남이 결정하는 거란다.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