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책방지기

독서1

by 오동

제주에서 20일 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다. 평소에도 제주를 좋아해서 자주 여행을 다니곤 했지만 길게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었다. 20일 동안 제주의 동쪽과 서쪽 모두에서 며칠씩 지냈지만, 가장 매력을 느낀 동네는 제주공항 근처인 제주 구도심이었다. 제주를 여행하게 되면 크게 동쪽, 서쪽 그리고 서귀포 중에 어디로 갈지 정하게 된다. 나에게 공항 근처는 오며 가며 시간이 나면 들리고 아니면 마는 그 정도의 동네였다. 이렇게 생각했던 구도심에 머물게 된 이유는 그곳에 위치한 독립서점에서 3일 동안 일일책방지기를 하기로 되어있어서였다. 일일책방지기란 작은 독립서점을 혼자 지키는, 일종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20일 제주 여행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고대하던 일이었다.


일일책방지기가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으로 제시간에 문을 여는 것이다. 출근을 하면 진열되어 있는 책에 쌓여있는 먼지를 털면서 비어있는 곳이 있으면 채우는 등 진열대 정리를 한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응대를 하고, 책이나 굿즈 판매를 하게 되면 장부를 적는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는 문 앞에 다음날 영업시간과 좋아하는 책의 문구나 아무 말이나 적은 작은 종이를 붙여놓고 문을 닫으면 된다. 이런저런 알바를 해봤지만 직접 가게 문을 열고 닫는 것은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일과시간 내내 가게 안에 혼자만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방에 흐르는 음악도 내가 골라야 했는데, 첫째 날은 정신이 없어 아무 노래나 나오게 했다가 둘째 날부터는 고심해서 배경음악을 틀었다. 내가 고른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 사람들이 방문하는 경험은 특별했다. 첫째 날 매출은 5권으로 저조했다. 주로 그냥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둘째 날에는 비가 와서 손님이 없겠구나 했는데 23권이 판매됐다. 비가 와서 비를 피할 공간을 찾아온 것이었을까. 하지만 주변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라서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자영업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영업의 자유로움과 동시에 불안정성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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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에는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는 실수를 했다. 서점이 문을 닫은 동안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쳐놨어야 되는데, 다음날 출근할 때 보니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창문을 깨고 도둑이 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온 둘째 날에는 제습기를 비우는 과정에서 세면대가 아닌 세면대인 척하는 인테리어에 물을 쏟아버려서, 애써 제습기가 빨아들인 물을 다시 바닥에 뿌린 꼴이 되었다. 책은 종이로 되어있기 때문에 습기를 조심해야 되는데 큰 잘못을 해버린 것이다. 마땅한 물걸레가 없어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찜찜하게 퇴근을 했는데, 저녁을 먹는 내내 신경이 쓰여 체하듯이 먹고 책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바닥은 다 말라있어서 걸레로 마무리를 하고, 물티슈로 가짜 세면대를 정리하고 난 뒤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퇴근을 했었더랬다. 마지막 날인 삼일째에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아마도) 실수 없이 매끄럽게 영업을 마무리했다. 역시 인간은 성장과 적응의 동물이다.


일일책방지기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 공간에 있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서점에서만 볼 수 있는 책들도 많아서 보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었다. 또 책을 추천받고 싶어 하는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 눈에 띄는 책들을 읽어두었다. 처음에는 막상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까 봐 조금 겁이 났다. 나는 에세이 애호가라서 다른 분야의 책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손님들은 책 추천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던 마지막 날 책을 추천해 달라는 문의가 들어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었고, 너무 다행히도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냉큼 이전에 재미있게 읽어서 서점을 정리하다 책장에서 발견했을 때 매우 반가웠던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 서점 사장님들이 쓴 에세이 그리고 아무튼 시리즈를 추천했다. 추천받은 것 중에 어떤 책을 살지 매우 궁금했지만, 손님이 책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었다. 나는 매너 있는 서점원이니까. 손님은 <다정소감>을 사가셨고, 마치 내가 쓴 책이 팔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내가 힘들 때 받았던 '다정'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에세이였는데, 그분께도 다정함이 충분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 종이에 포장을 했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책방에서의 3일 동안 마음껏 책을 읽고, 나만의 감성으로 공간을 꾸리고, 손님들을 응대했다. 독립서점에 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는데, 호기심에 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책을 구매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때의 경험 이후로 독립서점에 갈 때면 책을 꼭 한 권씩 사 오려고 한다. 이 공간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장님의 열정과 애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서점의 사장님이기도 한 황부농과 상냥이 작가의 책인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책은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각자의 크기로 횡포를 일삼지 않으며, 서로의 가치에 대해 시비 걸지 않는다. 아무렴, 오늘도 책들은 사이좋게 지낸다. 이처럼 책방은 평화로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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