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큰 변화들이 있던 건 아니다. 시간은 내가 바쁜 만큼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3월이 됐고 생일을 맞이했고 노화에 따른 얼굴 처짐을 걱정하는 나날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최근 안드레 애치먼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y by your name)>을 읽었다. 취업준비생이던 시절 혼자 충무로 독립영화관에 가서 영화로 먼저 접했던 책이다. (아, 책이 그 이후에 번역돼 나온 건가?)
아무튼 그때 나는 흰색 나이키 맨투맨에 빛바랜 편한 청바지를 입고 간 기억이 난다. (난 이렇게 의미 없이 사사로운 기억력은 좋다) 그때 나름 풋풋했다. 헤어 디자이너랑 연애 중이었다. 그 디자이너는 좀 제멋대로였다. 연락이 갑자기 10일 이상 뚝 끊기는가 하면, 들이댈 땐 엄청 적극적이었다. 역시, 헤어 또한 예술의 영역이라 자유로운 건가. 하면서 혼자 헷갈려하고 착각하고. 그 사람의 자유분방한 밀당에 정신없이 휩쓸려 살던 때였다.
그때 영화 속 올리버는 내겐 지나치게 '먼'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내면적 괴리감이랄까. 이렇게 성숙하고 완벽에 가까운 사람은 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미성숙한 생각들만 했던 것 같다. 흥. 역시 영화 속 캐릭터라 남다르네, 정도가 감상평의 전부였다.
그 후 몇 년 뒤 나는 원서로 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하나 구입하게 된다. 순전히 허세용이었던 것 같다. 두 장 읽다가 덮인 채 책은 아직까지 집에 잘 모셔져 있다.
또 그 후 몇 년 뒤 최근, 서점에서 우연히 한글로 이쁘게 번역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나게 된다. 망설임 없이 샀고 꽤 빠르게 읽었다. 반신욕을 하면서, 자기 전에,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틈틈이 봤다.
예전에 내가 느낀 올리버, 최근 내가 다시 읽은 올리버는 상당히 달랐다. 과거 올리버는 그저, 무심하면서도 매력적인 남성. 나 따윈 눈에도 안 들어오겠지. 끝.이었다면
최근 읽은 올리버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계속 그 사람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올리버란 캐릭터를 좀 더 면밀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올리버가 올리버가 되기까지 쌓은 수많은 경험, 깊이 있는 사유들을 간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올리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과거엔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사람만 생각한다. 신기하다. 줄거리도 알고 내용도 다 아는 콘텐츠인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라는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올리버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봤기 때문에 그게 내 이야기로 내 인식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그리고 책에서도 나왔듯 올리버나 엘리오다 둘 다 좋은 사람이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 또한 좋은 사람이 돼야겠단, 다소 상투적인 결론으로 성급히 글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