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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Sep 24. 2022

9월 24일 그림일기

새벽노을

"아니. 지금 방향이 맞다니까. 저기 봐. 저 차들은 지금 오른쪽으로 빠지고 있잖아. 나는 여기서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고."


그녀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차량용 내비게이션 화면에 그려진 빨간 선을 주시하며 나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었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길게 늘어선 빨간 후미등의 행렬은 자기 본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듯 연신 빨간빛을 뿜어대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난 말이지. 이런 피곤한 날에는 차가 푸슝~하고 목적지에 점프해서 이미 가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난 오늘 정말 피곤한데 운전까지 나만 해야 한다는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돼!"

조금 전의 기분 좋은 저녁식사 시간에 보여준 기분 좋은 호감의 파장과는 전혀 다른 파장의 에너지가 그녀에게서 분출되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는 이 날카로운 에너지 파장의 흐름을 바꿀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드디어 오른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며 "우리가 사려고 했던 거 있지? 그거 말이야. 아주 싸게 잘 산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응~~ 그거?"

이 한마디 톤에 자동차 내부의 공기는 금세 맑아졌다. 음성 에너지 파장이 갖고 있는 힘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민한 영혼이 안식처를 찾은 듯, 이 에너지 파장에 주파수를 맞추고는 지역방송을 시작한다.


"나는 처음에 말이지. 그 제품 너무 싸게 올라와서 긴가민가했었어!"


"응. 나도 그랬는데 결국 내가 가장 먼저 질렀잖아. 다른 사람들은 그냥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녀는 자신의 영혼에게 말하듯 눈빛이 그윽해졌다.


"오늘의 거래도 기대돼! 사진으로 보니 완전히 새 제품이더라고..."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이미 빈틈이 없어지고, 자신감 한 스푼이 더해진 진한 커피 향이 느껴졌다. 


빨간색 후미등으로 커다란 물결을 만들고. 썰물처럼 차량 더미에 이끌려 밀려가던 그녀의 차량도 다른 차량과 마찬가지로 목적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제 15분만 더 밀려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판이었다.


그때였다. 시야 먼 곳에서부터 차량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한 대 두 대 세 대 승용차의 후미등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보이는 광경은 자동차 전체가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다르게 해석할 수 없는 확실히 대형 사고였다.


서울 강북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이 사고를 이해하고 대응방안을 실행하기에는 다른 이들의 행동이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


앞서 가던 차량이 멈춰 서고 차 문이 열리며 운전자와 동승자들이 천천히 차량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그저 멀뚱히 사고 현장을 바라보기만 했지만, 누구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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